강팀과 평가전 '킬러본색' 다듬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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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 축구 대표팀은 불과 1년 전만 해도 유럽팀만 만나면 주눅이 들었다. 이른바 '유럽 공포증'이다.싸움 대상에게 심리적으로 지고 들어가니 경기가 제대로 될 리 만무했고 승패는 보나마나 한 경우가 많았다.

히딩크 감독 부임 후 첫 대회였던 지난해 1월 홍콩 칼스버그컵 대회에서 한국팀은 노르웨이에 2-3으로 역전패했다. 노르웨이는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에 완패한 폴란드와 함께 월드컵 유럽 예선에서 같은 5조에 편성됐으나 4위로 본선 근처에도 오지 못한 팀이다.

두바이 4개국 대회에서도 한국은 덴마크에 0-2로 졌다. 덴마크가 이번 월드컵에서 프랑스를 꺾고 16강에 진출했지만 당시 출전팀은 '2진'이었다.

한국의 '유럽 공포증'이 절정에 달한 것은 지난해 5월 컨페더레이션컵 프랑스전과 8월 전지훈련 때의 체코전이었다. 두번 모두 0-5의 대패. 월드컵 개막이 1년도 남지 않은 때였다.

그런 대표팀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난 것은 지난 3월 유럽 전지훈련에서였다. 비록 주전 두 세명이 빠지긴 했지만 북유럽의 힘과 높이를 앞세운 핀란드를 2-0으로 꺾었다.

이어 이번 대회 4강에 오른 터키전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당시 터키는 하칸쉬퀴르 등 주전이 모두 출전했고 이 때 무승부가 유럽 징크스를 깨는 결정적인 계기였다는 평가다.

두려움을 털어낸 대표팀은 이후 유럽의 강호인 스코틀랜드·잉글랜드·프랑스전까지 세차례 평가전에서 상대를 압도하거나 대등한 경기를 벌임으로써 자신감을 얻었다.

이같은 자신감이 이번 월드컵에서 폴란드·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 등 세계적 강호들을 쓰러뜨리고 4강에 오른 자산이 됐다는 해석이다.

대표팀이 '유럽 킬러'로 변신하게 된 것은 체력 강화와 몸싸움 훈련 등을 통해 유럽팀들에 대한 적응력을 높인 게 주효했다. 또 "질 때 지더라도 제대로 된 팀과 겨뤄봐야 한다"는 히딩크 감독의 지론에 따라 강한 유럽팀들과의 평가전을 통해 막연한 두려움을 털어버렸기 때문이다.

히딩크 감독은 부임하자마자 유럽의 강팀들과의 경기를 주선해달라고 축구협회에 요청했다고 한다. 승패에만 집착해 큰 대회를 앞두고 3류팀과 쉬운 경기만 치렀던 한국팀으로서는 의외의 주문이었다.

결국 한국팀은 유럽 전지훈련에서 자신감을 얻었고 월드컵 직전 스코틀랜드·잉글랜드·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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