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유럽킬러'로 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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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유럽팀만 만나면 벌벌 떨던 팀이 1년반 만에 유럽 킬러가 됐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바로 이런 경우였다.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폴란드·포르투갈을 꺾은 데 이어 16강전에서 이탈리아, 8강전에서 스페인 등 유럽의 강호들을 잇따라 쓰러뜨렸다. 더구나 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은 모두 우승후보로 거론되던 팀이었다.

국제축구연맹(FIFA)랭킹 5위(포르투갈),6위(이탈리아),8위(스페인)를 연파한 한국은 한·일 월드컵 최대 이변의 주역이 됐다. 준결승에서 만날 독일 역시 유럽팀이다. FIFA 랭킹은 11위다. 그래서 한국의 결승행도 불가능이 아니라는 얘기다.

세계 최고의 클럽팀으로 꼽히는 레알 마드리드와 발렌시아 소속 선수들을 주축으로 1950년 브라질월드컵 이후 52년 만에 월드컵 4강행을 노렸던 스페인은 한국의 벽을 넘지 못하고 또 다시 8강에 만족해야 했다.

8년 전 미국월드컵에서 스페인과 2-2로 비겼던 한국의 발목을 붙잡았던 것은 실력이나 명성보다 상대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8년 만에 다시 스페인을 만난 한국은 전혀 다른 팀이었다. 더 이상 상대팀에 주눅들지 않았다.

하지만 선수들의 몸은 무거웠다. 4일 전 이탈리아와 연장 접전을 치르며 체력을 소진한 한국선수들은 이날 정신력만큼은 무서웠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스페인도 아일랜드와의 16강전에서 연장끝에 승부차기로 이겼으나 한국보다 이틀을 더 쉰 덕인지 몸놀림이 가벼웠다.

스페인은 네차례의 경기에서 한번만 출전, 체력을 아꼈던 21세의 신예 호아킨을 오른쪽 공격형 미드필더로 배치, 주도권을 잡았다. 호아킨은 자기 영역에서 벗어나 그라운드를 넓게 쓰며 활기차게 공격의 물꼬를 텄다. 자연히 위협적인 장면이 자주 나왔고 슈팅도 잦아졌다. 전반에 단 한개의 슈팅만 기록할 정도로 무기력한 한국은 어떻게든 전반을 무사히 넘겨야 했다.

스페인의 공격은 후반 들어서도 거셌으나 위기때마다 골키퍼 이운재가 모두 막아냈다. 골을 넣지 못하자 스페인도 지쳐버렸다. 연장전 들어서는 오히려 한국의 플레이가 살아나면서 '기적'을 예고했다.

광주=특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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