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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날의 칼 위에 선 이재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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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그날 은평을에 가봤다. 오전 11시30분, 대조동 ‘나눔의 둥지’ 무료급식소.

50평 남짓한 건물 지하에 한 끼를 위해 기다리는 노인들이 가득했다. 식판을 나르는 자원봉사자들 사이로 희끗한 머리에 분홍색 비닐 앞치마를 두른 그가 보였다. “한 표 달라”는 말도 없이 가지 무침과 배춧국이 담긴 식판을 날랐다. 가끔씩 “많이 잡수세요” “천천히 드세요”란 말만 했다. 한 시간쯤 지나 노인들이 빠져나가자 그는 벽쪽 싱크대로 가 아주머니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설거지를 했다. 이날 노인 급식은 선거 일정 중 하나다. 대개 오전 6시가 안 돼 집에서 나와 밤 12시가 넘어 들어간다. 그는 “집에 들어가면 머리가 뱅뱅 도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친박이었던 김무성 원내대표의 지원을 사양했다. 선거에 도움이 될 듯한데도 말이다. 오직 수행비서와 단 둘이 지역을 다닌다. 정치인이 선거를 통해 단련되고 성장하지만 그에게 이번 선거는 그런 게 아니다. 그의 정치 생명이 달렸다.

사실 안 나올까 하는 생각도 했다. 정부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도울 길이 없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방선거가 패배로 끝나면서 모든 게 변했다. 피할 수가 없게 됐다. 그가 나오지 않으면 ‘형편이 어려워지니 피했다’는 소리가 나올 게 분명했다. 배수진을 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은 여전히 열악하다. 지방선거 패배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다.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파문으로 야당의 기세가 등등하다. 여권은 내부 권력 투쟁 양상을 재연하고 있다. 민주당에선 ‘나가면 이긴다’며 수많은 후보가 은평을 바라보고 있다.

설거지를 끝내고 식판에 배식을 받아 자리에 앉은 그에게 물었다. “개인적으로 참 중요한 선거인데요”라고 했더니 그는 “내 정치 인생에서 지금까지가 1막이었으면 (선거 후부터는) 2막이 시작되는 거지”라고 말했다. 이어 “이 정권에도 중요하지요”라고 다시 물으니 “사실은 그래서 부담이 크다”고 했다.

그는 얘기 도중 “어렵다”는 얘기를 여러 번 했다. 그중 가장 어렵다고 한 건 이랬다. “나를 이재오 개인으로 안 본다. 내가 가면 주민들이 인간 이재오는 좋아하지. 그런데 정권에 대한 심판으로 여기며 나를 정권의 후보로 보는 눈이 참 부담스럽다.”

7·28 재·보선에서 은평을은 최대 관심 지역이다. 그에게 이번 선거는 양날의 칼이다. 이기면 그의 역할은 커질 게다. 친이계의 진로가 달라질 수 있다. 2012년 대선 구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면 그의 정치 생명은 치명적일 수 있다. 정권도 부담이 커진다.

그에겐 ‘2인자’ ‘실세’의 이미지가 덧입혀 있다. 하지만 권익위원장을 지내며 그는 친서민과 반부패를 강조했다. 유권자들은 그가 당선 후 ‘실세의 길’로 갈지, ‘서민의 길’로 갈지를 지켜보고 있다. 그는 일단 몸을 낮추고 있다. 은평이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신용호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