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의 족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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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의 뉴욕타임스(NYT)지는 1896년 유대계 신문경영인 아돌프 오크스가 인수한 이래 '유대인 신문'이라는 인상을 불식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에 걸쳐 맹위를 떨쳤던 미국 내 반(反)유대주의를 의식한 탓도 있지만, 공정성과 다양성을 인정받아 일류신문으로 성장하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오크스의 뉴욕타임스는 우선 시오니즘(유대인의 팔레스타인 내 국가건설운동)에 대해 "비현실적이고 위험하며 환상적"이라는 이유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유대인단체의 의견광고 게재는 거부했다. 나치시대 독일의 유대인이 "우리의 참상을 알아달라"며 보내온 투고문을 싣지 않아 비판받기도 했다.

뉴욕타임스의 유대인 기자는 반세기 이상 편집국장 자리를 넘보지 못했다. 최초의 유대인 편집국장(에이브 로젠탈)은 1969년에야 탄생했다. 유대인 기자들은 또 30년대 후반까지도 기명(記名)기사를 쓸 수 없었다. 50년대에는 한동안 유대인 기자의 채용을 제한했다. 이 모두가 지면에서 '유대인 색깔'을 지우기 위해서였다.

뉴욕타임스의 오랜 방침이 바뀌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67년의 중동전쟁이었다. 미국 내 여론이 유대인·비유대인을 막론하고 압도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자 이 신문도 스스로 채운 족쇄를 풀었다. 69년부터 세차례 연속 유대인 편집국장이 탄생한 것은 이같은 변화를 상징한다.

뉴욕타임스의 예에서 보듯이 유대인이나 이스라엘 문제는 미국 언론계나 정계에서 대단히 민감한 사안이다. 유대인은 미국 인구의 2%(약 6백만명)에 불과하지만 영향력은 막강하다. '유대 기피' 족쇄를 오래 전에 풀었다는 뉴욕타임스도 지난달 뉴욕의 반이스라엘 시위 사진을 크게 실었다가 유대인단체의 집중 항의를 받고 사과문을 싣는 수모를 겪었다. 지난 18일엔 미국 최대의 케이블 뉴스채널인 CNN의 창업자인 테드 터너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서로 테러를 가하고 있다"고 발언했다가 이스라엘·유대계로부터 십자포화를 맞았다.

꼭 미국 얘기만 할 것도 아니다.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다룰 때 언론으로서는 '양쪽에서 욕먹는' 편이 속 편할 때가 많다. 그런 점에서 월드컵 관련 보도는 기자로서 행복한 일감에 속한다. 온국민이 하나가 되어 있으니까.

노재현 국제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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