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장규 칼럼

거품 예찬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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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언제부터인가 '거품(버블)'이라면 모두들 질겁을 하게 됐다. 분수 넘치게 흥청대다가 혼쭐이 나고 고생했던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거품경제니 버블경제니 하는 것이다. 1980년대 3저 호황 이후의 거품을 비롯해 97년 금융위기 이후의 벤처 붐으로 인한 거품이 그랬다. 아직도 후유증이 심각한 불량신용자 문제 또한 신용카드 보급 확대가 가져온 거품 현상 탓이다.

*** 거품의 순기능도 볼 수 있어야

거품은 실체를 부풀려 보이게 하는 눈속임이요, 이내 사라져버리고 마는 허상이나 착각쯤으로 각인돼 있다. 사람들 마음에 헛바람을 불어 넣고는 뒷감당도 못하게 만드는 아주 못된 것이 바로 거품이라는 것이다. 소비자들에겐 분에 넘치는 소비를 조장하고 기업들한테는 일확천금의 꿈에 과투자.오투자를 촉발시킨다. 일본 같은 큰 나라도 거품경제로 혼이 났다. 80년대 말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부동산 값은 무려 80%가 떨어졌다. 100원까지 올랐던 것이 20원으로까지 떨어진 셈이다. 거품이 꺼지고 경제가 제대로 회복되는 데 10년 이상이나 고생했다.

거품을 배격하는 분위기는 노무현 정부 들어 더욱 견고해져 왔다. 김대중 정권에서 일으킨 신용카드 거품 뒤치다꺼리로 애를 먹었는 데다, 집권층의 반기업 정서 경향도 작용한 것 같다. 공정거래정책이나 세금정책을 쓰는 것을 봐도 거품 같은 것은 아예 발도 못 붙이게 하겠다는 단호한 정책의지가 읽혀진다. 부동산 정책 역시 경기를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깡그리 때려잡겠다는 식이다. 많은 이들이 적극적인 성장정책을 써야한다는데도 불구하고 이 정부가 여태까지 부양책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 온 것도 거품경제에 대한 경계감 때문이다.

거품이라는 게 과연 그처럼 나쁜 존재인가. 한국경제에 해악만 끼쳐온 것일까. 생각을 좀 달리해보면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사실 경제가 하도 냉랭하고 활기를 잃어가니까 거품이 좀 일더라도 북적거렸으면 하는 측면도 있다. 어쩌면 거품 기피 현상이 지나쳐 경제를 너무 주눅 들게 하고 있지도 모른다. 거품의 역기능 못지 않게 순기능도 있을 텐데 결벽증 환자처럼 너무 역기능 걱정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거품이라는 말의 원천인 비누를 보자. 비누거품이 나쁜 것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거품이 안 나는 비누는 비누가 아니다. 좋은 비누일수록 거품이 잘 난다. 사람 몸뚱이든 빨랫감이든 비누를 문지르는 과정에서 거품이 나고 그 거품이 기름때를 녹여 머금고 사라지면서 세탁의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결국 거품이 나야 때가 빠지는 것이요, 거품이 부풀었다 사라지는 과정에서 빨랫감이 다시 깨끗해지는 셈이다.

거품예찬론을 펴자는 게 아니다. 경제의 거품도 어떤 면에서는 이 같은 비누거품 같은 순기능도 있다는 이야기다. 경제가 흥이 나고 달아오르는 과정에서 생긴 독소들을 제거하고 불순물을 정화시키는 과정이 바로 거품이 꺼져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경제에서의 거품은 경쟁과 활기에서 일어난다. 거품이 완전히 말라붙은 경제는 치열한 경쟁의 동인도 없고 활력도 떨어진다. 그 요란했던 벤처만 해도 '붐'이 없었다면 '거품'도 없었다. 다만 거품의 후유증이 너무 고통스러웠던 탓에 벤처 비즈니스 자체에 대한 이미지까지 떡을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벤처사업가라면 허풍쟁이나 한탕주의자쯤으로 여겨지고 있으니 말이다.

*** '벤처 어게인' 간절히 기원

이러한 벤처에 정부가 최근 다시 대대적인 지원책을 들고 나왔다. 벌써 거품 걱정도 나온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순 없다. 만신창이 벤처업계가 정신차릴 때도 됐다. 물론 그래도 실패하는 벤처가 적지 않을 것이다. 크고 작은 도덕적 해이 시비도 속출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도 기업도 거품의 해악을 충분히 경험했으니 감시하는 기술도 한결 나아졌을 것이다. 그동안 비싼 월사금을 내면서 터득한 교훈도 많았을 것이다. 정말 잘됐으면 좋겠다. "벤처 어게인"을 기대한다. 거품의 부작용들을 무릅쓰고 이처럼 간절하게 "벤처 화이팅"에 기대를 거는 까닭은 질곡에 빠져들고 있는 오늘의 한국경제를 살려낼, 신산업 창출의 선봉장들이기 때문이다. 불굴의 기업가 정신과 기백이 절실한 때다.

이장규 경제전문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