量子 컴퓨터 실용화하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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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940년대의 과학잡지에는 "미래의 컴퓨터 무게는 1.5t 보다 가벼워질 수 있다"라는 말이 나온다. 그리고 미항공우주국(NASA)에서는 우주 탐사선에 최고 성능의 대형 컴퓨터를 실어 보냈는데 그것이 토성에 도착했을 때는 개인용 컴퓨터보다도 훨씬 뒤떨어진 성능을 갖게 됐다.

이는 컴퓨터의 성능이 얼마나 비약적으로 발전해 왔는지를 말해준다. 지난 세기부터 시작된 컴퓨터의 발전은 컴퓨터 부품의 경이적인 소형화와 함께 진행돼 왔다. 컴퓨터의 성능은 컴퓨터의 연산속도와 정보 저장능력이 증가함으로써 향상되는데, 이 두가지는 모두 컴퓨터 부품의 소형화에 의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컴퓨터의 연산속도를 향상시키려면 첫째로 연산을 수행하는 데 드는 시간(clock speed)을 단축시켜야 하고, 둘째로 어떤 연산의 결과를 다음 연산이 진행되는 장소까지 전달하는 데 드는 시간을 단축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신호 전달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시키려면 컴퓨터 부품을 소형화하고 이들 부품 사이의 간격을 줄여야 한다. 칩의 정보저장 능력과 관련해 1비트의 정보를 저장하기 위해 필요한 원자의 수는 60년대 이후 18개월마다 반으로 줄어들었다. 이러한 경향이 지속된다면 10여년 후에는 하나의 원자에 1비트의 정보를 저장하는 한계에 다다르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컴퓨터 부품을 소형화하고 저장공간을 축소시키면, 이들의 작동에 양자역학적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양자역학은 20세기 초반부터 발전하기 시작한 것으로서, 미시세계의 물리계를 기술하는 물리학의 가장 기초적인 분야다. 미시세계에는 우리가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거시세계와는 전혀 다른 양자역학 특유의 고유현상이 존재한다. 이러한 양자역학적 특성은 지금과 같은 컴퓨터의 소형화만 지속된다 하더라도 계산과정에서 저절로 드러나지만,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이 양자계산이다.

양자계산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고전컴퓨터로는 불가능한 큰 정수의 인수분해가 양자알고리즘에 의해 가능하다는 것이 알려지고 나서다. 큰 정수를 효과적으로 인수분해할 수 있게 되면 현재 사용하는 암호체계는 붕괴된다. 따라서 양자컴퓨터가 실용화되면 금융거래나 인터넷 접속 등 암호체계를 기반으로 한 실생활의 여러 부분이 직접적 영향을 받게 된다. 이렇게 양자역학은 현재의 암호체계를 해독함으로써 이를 무력화시키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거의 완벽하게 보안이 유지되는 양자 암호체계를 가능하게 하기도 한다.

지난해에 IBM은 원자 7개를 사용해 정수를 인수분해할 수 있는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아직은 15를 3과 5로 인수분해하는 정도의 성능에 불과하지만 양자계산의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이 분명하다. 양자계산이든 양자암호든 그 모든 것이 가장 기본적인 양자역학에서 비롯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초분야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쉽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가장 기초적인 것은 세계의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기초체력을 충실히 한 한국 축구가 몇단계 업그레이드된 것과 같이 정말로 의미 있는 도약을 위해서는 인문·사회·자연과학의 어느 분야이든 기초학문을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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