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기업에 돈 요구하는 시민단체의 일그러진 모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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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시민단체는 비정부기구(NGO)지만 입법·사법·행정·언론에 이어 제5부로 불릴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다. 정부와 기업이 사업을 벌이려면 시민단체의 눈치를 보는 세상이다. 그에 걸맞게 도덕성과 청렴성을 시민단체의 생명으로 받드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무슨 ‘완장’이라도 찬 듯한 일탈(逸脫)이 곳곳에서 여전하다.

인천 지역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소통한마당준비위원회’가 1일 송영길 인천시장의 취임을 축하하는 4000여만원짜리 행사를 열면서 기업에 경비 일부를 ‘협찬’ 명목으로 요구했다고 한다. 다행히 이 사실이 공개되면서 성사되지는 않았다. 몇 년 전 참여연대가 사옥을 마련한다며 기업들에서 후원금을 거둬 물의를 빚었던 구태(舊態)가 아직도 되풀이되고 있다니 한심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기업에 손 벌리기를 관행(慣行)으로 여기는 작태다. 주최 측은 “민간단체가 행사를 준비할 때 예산이 부족해 기업·기관에 협조를 구하는 것이 큰 문제 될 것은 없다고 본다”고 해명했다. 이번뿐 아니라 예전에도 유사한 ‘협찬’ ‘후원’을 요청했다는 뉘앙스다. 말이 협찬이지 시민단체의 위력을 아는 기업들로선 봉투를 건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시민단체에 미운털이 박히면 제대로 사업조차 못하는 게 현실이다. 더구나 새로 취임하는 시장을 위한 행사라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하니 오죽하겠는가. 차제에 정부는 기업들의 이런 애로를 파악해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시민단체가 정치에 물들고 있는 점도 짚어봐야 한다. 문제가 된 행사는 ‘범야권 연대를 희망했던 인천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의 염원과 시민들의 목소리를 새로 취임하는 시장에게 전달하기 위해’ 기획됐다고 한다. 특정 세력과 밀착해 감시와 견제라는 본연의 기능을 버린다면 시민단체는 시민의 이름만 파는 패거리로 전락한다. 이런 측면에서 새로 출범한 지방자치단체에 각종 위원회가 생기고 시민단체들이 대거 참여하는 것은 생각해 볼 대목이다. 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자칫 시민단체가 관변단체화·권력화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돈과 권력은 시민단체가 가장 경계해야 할 달콤한 유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