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감정 관련 물러설 수 없는 사안 韓·中 수교 10년'최대 惡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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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중국 공안·보안 요원이 한국 대사관에 침입해 탈북자를 강제 연행하고, 한국 외교관을 폭행한 사건을 놓고 한·중 양국이 가파른 외교 마찰을 빚고 있다.

우리 측이 중국 측에 항의하고 사과·재발 방지를 요구한 데 대해 중국 측이 대사관 침입은 사실무근이고, 외교관 폭행 사건에 대해서는 오히려 한국 외교관이 중국의 법 집행을 방해했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고 맞받아쳤기 때문이다.

정부는 "중국 측 주장은 말도 안된다"는 입장이어서 양국 간 대립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특히 중국 측이 외교 경로가 아닌 언론 발표를 통해 입장을 밝힌 데 대해 불쾌하다는 반응들이다.

일부 언론사를 불러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은 우리 정부를 무시한다는 인상마저 준다. 우리 정부를 궁지로 몰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우리 대사관 측이 비공식적으로 탈북자 진입을 막아달라고 했다고 흘린 것은 한국 국내 여론에 의한 정부 때리기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관계자는 "뭔가 찔리는 구석이 있어 중국 측이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 측의 이런 분위기나 중국의 완강한 입장을 감안하면 이번 사건은 수교 10년을 맞은 한·중 관계에서 가장 큰 악재(惡材)가 될 것이 확실하다. 2000년 마늘 분쟁을 겪었지만 이는 경제 문제였고, 1997년 황장엽(黃長燁)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한국 망명 때도 어려운 국면이 있었지만 그 본질은 북·중 혈맹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외교부 관계자는 "한·중 수교 이래 이번 사건처럼 우리가 물러설 수 없고, 또 국민 감정이 불붙기 쉬운 사안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의 파장은 만만찮다.당장 올해의 '한·중 국민 교류의 해'가 빛이 바랠 수 있다

중국에 대한 국민의 이미지도 나빠지고 비난 여론도 높아질 것이다. 외교 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절대적인 공관의 불가침권을 어긴 국가를 보는 국민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중국의 인권정책 등에 대한 국제 사회의 공세도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건은 또한 한·중 관계의 이중성도 드러냈다.양국은 수교 이래 서로 셋째 교역 상대국으로 발돋움했지만 정치적 신뢰는 반석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변하고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경제적 세계 표준에는 다가섰지만 정치 문제는 또 다른 일방주의라는 논란마저 불러일으킨다. 중국이 대외관계의 장전(章典)으로 삼는 '평화 공존 5원칙'은 주권과 영토 안정의 상호 존중을 그 첫째로 내세우지만 이번 사건에 대한 중국 측 태도는 이와 거리가 멀다.

한·중 간 외교 마찰은 우리의 탈북자 정책에도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의 조용한 외교 원칙을 접고 더욱 공세적인 태도를 중국에 보일 전망이다.

서울=오영환 기자,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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