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청거리는 자민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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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방선거의 패배가 자민련을 공황(恐慌)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당의 사활을 걸었던 대전시장 선거에서 졌을 뿐만 아니라 정당 지지도에서 민주노동당에 뒤처진 4위를 기록했다. 정치권에선 이같은 결과에 대해 "사실상 유권자들이 정계개편을 한 거나 마찬가지"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자민련 김종필(金鍾泌·JP·얼굴)총재는 40여년간 무수한 위기를 헤쳐왔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충청권에 대한 영향력이 이미 바닥이라는 게 명백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자민련으로선 최대 승부처인 대전에선 공공연히 "JP가 안 오는 게 오히려 도와주는 것"이란 얘기가 자민련 관계자 사이에서 나돌았다.

정당 지지도는 한나라당이 충북(51.4%:23.2%)과 대전(42.9%:35.0%)에서 자민련을 훌쩍 뛰어넘었다. 충남(33.1%:40.5%)에서도 턱밑까지 추격했다. 아산·연기·예산·제천·음성 등 자민련 현역의원이 있는 선거구 5곳에서 기초단체장을 한나라당에 내줬다. 당연히 의원들이 동요할 수밖에 없다.

정우택(鄭宇澤·진천-괴산-음성)의원은 14일 향후 당의 진로에 대해 "별 뾰족한 수가 없다. 시간이 흘러봐야 알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완구(李完九·청양-홍성)의원은 "당에 대한 민심의 소재가 확인된 이상 모든 것을 원점에서 재점검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중대한 국면에 들어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진석(鄭鎭碩·공주-연기)의원은 "지난해 초 '의원 이적' 파동 때 강창희(姜昌熙)의원을 내쫓은 데서부터 당이 뭔가 잘못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의원들은 탈당 가능성을 모두 부인했지만 지난번 함석재(咸錫宰)의원 탈당 때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강도가 낮았다.

이날 오전 당사에서 열린 부총재단 회의에서 정상천(鄭相千)중앙선대위원장은 "선거 결과를 겸허히 수용해 심기일전의 기회로 삼겠다"고 했지만 분위기는 썰렁했다. 중간 당직자들도 일손을 놓고 당의 앞날을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자택에서 칩거 중인 JP는 서울 신당동으로 찾아온 부총재단으로부터 당직 일괄사퇴 보고를 받고도 별 말이 없었다고 한다.

이미 당내에선 "JP를 내세워선 대선 국면 돌파가 어렵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JP를 2선 후퇴시키고 새로운 인물과 연합해 당을 일신하자는 것이다.

당 핵심 관계자는 "JP가 모든 기득권을 내놓고 이인제(李仁濟)·박근혜(朴槿惠)·정몽준(鄭夢準)의원과 '4자 연대'를 추진하는 길만이 유일한 활로(活路)"라며 "이게 성사되지 않으면 의원들의 이탈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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