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名家 맏형…"자랑스런 히딩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거스 히딩크. 그는 올해 한국 사회에 엄청난 신드롬을 몰고 왔다. 한국의 각 분야에서 그를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기본기 충실, 뚝심과 소신, 능력 중시 등 그의 지도 방식은 사회 전반에 지대한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히딩크, 그는 누구인가. 네덜란드 현지 취재를 통해 알아 본다.

편집자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 내릴 때부터 기분이 좋았다. 나이 지긋한 택시 기사가 한국에서 온 기자라는 말에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미소부터 보낸다.

"한국팀이 그렇게 잘할 줄 몰랐다. 우린 비록 월드컵에 못 나갔지만 모두 히딩크가 이끄는 한국팀을 응원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전적을 줄줄이 꿰고 있는 그는 한국팀을 한참 칭찬한 뒤 이번 대회는 이변이 많아 특히 재미 있다고 말한다. 네덜란드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해 이곳엔 월드컵 열기가 없을 것이란 생각은 처음부터 빗나갔다. 자칭 '축구 전문가'인 택시 기사뿐 아니라 공항 대합실에서도, 식당에서도 모두 축구 중계에 몰두해 있다.

네덜란드 남부 제이스트라는 시골 마을로 축구협회를 찾았다. 한적한 숲 속에 왕립네덜란드축구협회(KNVB)라고 쓴 깃발이 펄럭인다.

"우리가 본선에 나갔으면 지금 거리는 온통 오렌지색으로 뒤덮였을 것이다. 그래도 축구 팬들은 경기마다 '네덜란드 커넥션'을 찾아 관심있게 지켜본다."

아냐 반 힌호벤(27)대변인의 설명이다. '네덜란드 커넥션'이란 현재 네덜란드 리그에서 뛰는 각국 선수나 네덜란드인 감독·코치·심판 등 어떤 형태로든 네덜란드와 관계 있는 사람들이다. 이 커넥션 중 히딩크가 가장 관심을 끌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와 함께 일해 본 적은 없지만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1년반도 안되는 사이에 한국팀을 완전 개조한 그는 진짜 프로다. 나 자신을 포함, 최근에 한국을 좋아하게 된 사람이 많다. 그는 이처럼 한·네덜란드 관계 증진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히딩크의 지도 스타일이 이곳에선 당연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과거 식민지를 경영해 문화적으로 다양한 민족이 어울려 사는 네덜란드에선 능력만이 유일한 판단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선 선수 선발 때 능력 외에 학연이나 지연·인기도 등을 고려하기도 한다는 설명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아무래도 히딩크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의 가족이다. 독일과의 국경 도시 두틴헴을 찾았다. 그가 처음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현재 그의 가족이 사는 곳이다. 두넨웨그 55번지 울창한 숲 속에 있는 2층짜리 그의 집엔 아무도 없었다. 부인 이니 여사는 현재 여행 중이라고 이웃이 말했다.

이곳에서 불과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드 흐라프샤프 구단. 1967년 히딩크가 처음 선수 생활을 시작한 곳이다. 네덜란드 1부 리그에 소속된 이 구단의 훈련 캠프 소장으로 일하는 히딩크의 동생 르네(46)가 반갑게 맞는다.

"형이 자랑스럽다. 지난해 12월 제주도로 형을 찾아간 적이 있는데 벌써 그때 자신감에 차 있었다. 뭔가 해낼 줄 알았다."

그는 히딩크가(家)가 이곳에선 유명한 축구 집안이라며 가족에 대해 설명했다. 아버지(85)와 어머니는 히딩크가 태어난 인근 파르세펠트란 마을에 살고 있는데 아직 정정하다. 교사였던 아버지는 프로팀이 없던 30년대 네덜란드 최고의 아마추어팀에서 선수로 활약했다. 아들 6형제 중 3남인 거스, 5남 르네, 6남 카렐이 아버지에게 배워 프로축구 선수가 됐다. 모두 왼발을 쓰는 것도 아버지를 닮았다. 70년대 중반 삼형제가 동시에 흐라프샤프팀 소속으로 뛴 적이 있는데 형인 거스가 가장 뛰어났다고 한다.

"이곳에서 미드필더로 인기를 끌던 형이 70년 아인트호벤으로 이적했다. 아인트호벤에서 그다지 성적이 좋지 않아 다시 돌아오려 했지만 당시 흐라프샤프팀이 가난해 이적료를 댈 수 없었다. 그러자 두틴헴 시민들이 모금 운동을 했다. 1인당 10길더씩 모아 당시로선 거금인 5만길더의 이적료를 내고 형을 데려와 팀이 전성기를 맞았다"

-형의 강점은 무엇인가.

"우선 경험이 많다는 점이다. 선수로서, 그리고 지도자로서 지금까지 능력을 인정받았다. 감각이 뛰어나다. 그리고 아무리 선수가 잘 해도 편애하지 않는다. 또 자기가 일단 쓴 선수는 조금 못해도 사랑으로 감싼다."

-가족은.

"30세, 25세 된 아들이 둘 있는데 함께 비디오 관련 사업을 한다. 아들들과 사이가 좋다. 더 이상 개인 문제는 묻지 마라."

히딩크에 대한 이 지역 주민의 애정은 아직도 대단하다.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흐라프샤프팀의 요스 게르켄 대변인은 "2~3년 후엔 히딩크가 우리 팀 감독으로 올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두틴헴=유재식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