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폭탄 증거있나" 美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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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워싱턴=이효준 특파원] 미 법무부가 지난 10일 발표한 '더러운 폭탄'(방사능 물질 함유 폭탄)테러 음모 적발과 관련, 미국 내부와 해외에서 잇따라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11일 "당국이 최근 자주 발동한 테러 경고처럼 이번 발표에도 많은 의문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타임은 "체포된 용의자 압둘라 알 무하지르(본명 호세 파디야)가 '더러운 폭탄'을 만드는 데 필요한 방사능 물질을 입수했다는 증거가 전혀 없으며, 알 카에다와의 연관성도 정부의 막연한 주장 외에는 없다"고 보도했다.

잡지는 또 " 무하지르가 지하조직을 노출시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미 연방수사국(FBI)과 중앙정보국(CIA)이 그를 조기에 체포한 것도 큰 의문"이라며 "무하지르가 구체적 테러음모를 꾸몄다기보다 예비조사를 한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뉴욕 타임스도 당국자를 인용, "(알 카에다를 포함한)테러범들이 방사능 물질을 갖고 있지 않다"면서 "무하지르의 계획은 알 카에다의 지시라기보다 열광적인 자원자의 생각일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도 "영국 등 유럽의 보안 관리들도 미국의 발표에 큰 의문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영국의 소식통을 인용, "미국의 광범위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무하지르가 폭탄 제조에 필요한 방사능 물질을 입수하려 했음을 입증하는 증거가 없다"며 "그에게 둘 수 있는 최대 혐의는 '그런 계획에 착수할 의도를 갖고 있었다'는 것뿐"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국적자인 무하지르를 '적군 전투원'으로 규정해 기소 절차도 없이 해군 형무소에 구금한 것에 대한 법적 반발도 커지고 있다.

무하지르의 변호사 도나 뉴먼은 "당국은 체포·구금의 증거를 밝히지 않았고, 변호사 접촉도 무조건 차단시켰다"고 비난했다.

노스웨스턴대 국제인권센터의 더글러스 카셀 교수는 "이번 사태는 대통령이 어떤 미국 시민이라도 적군 전투원이라고 규정하면, 법적 절차 없이 구금하고 전범 재판에 세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면서 "심각한 사태"라고 말했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날 "무하지르는 사실상의 살인범"이라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더러운 폭탄에 대한 전면수사를 벌이는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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