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의 컴퓨터·통신 용어 통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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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남북한의 컴퓨터·통신 용어를 이번에 통일한 것은 양측 학술 교류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남북한·중국 옌볜(延邊)의 학자들과 공동연구팀을 만들어 8년여 만에 『한·영·조·중·일 정보기술 표준용어사전』 을 펴낸 한국어정보학회 진용옥(陳庸玉·59·경희대 교수)회장.

그는 "이번 작업으로 통일에 대비해 작은 밑돌 하나를 놓은 셈"이라고 말했다. 영어·일본어·중국어와 남북한 언어로 정리한 용어 사전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개국에서 용어 표준화 연구에 참여한 학자는 연인원 50여명.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어정보학회가, 북한에선 조선과학기술총연맹과 조선교육성이, 중국에서는 조선어정보학회가 참여했다. 1994년 옌볜에서 열린 '한국어 컴퓨터 처리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한 세나라 학자들이 의기투합한 게 계기가 됐다. 그후 8년여에 걸쳐 작업하는 동안 북한과 옌볜 학자 두명이 불의의 사고로 운명을 달리하기도 했다.

陳교수는 우리측 수석 대표다. 그는 연구팀이 정치적 문제나 턱없이 부족한 연구비 때문에 무너질 위기에 처할 때마다 불씨를 지피는 역할을 했다. 정부 연구비 5천여만원으로 연구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그는 사재 1억5천여만을 연구비로 내놓았다.

연구 초창기에는 남북한 간 팩스 전송에만도 한달이 걸렸다. 또 함께 연구할 시간이 부족해 옌볜에서 학회가 열릴 때마다 연구팀은 합숙하며 용어를 정리했다.

이번에 펴낸 표준용어사전에는 국제표준화기구(ISO)에 등재된 정보통신 용어 4천31개가 실렸다. 예를 들면 '01.01.02(ISO 번호):data(영문):자료(한글):手居(중국어):デ-タ(일어)=영문 해설/한글 해설'순으로 용어를 정리했다. 남북한이 같은 용어를 쓰면서도 뜻이 다른 경우는 없게 했다.

陳교수는 "중국이 앞으로 소수민족 용어를 표준화할 때도 이 사전을 그대로 쓸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언어를 표준화하려면 어느 한쪽을 눌러야 되는데 남북한의 경우 어느 한쪽을 방언처럼 생각하면 문제가 없습니다. 이번 연구에서도 남북한이 우려했던 만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아 놀랐지요."

陳교수는 국제표준 용어를 우리나라가 앞장서 제안하는 시대가 오길 바라고 있다. 그것이 'IT강국'의 면모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출판 기념회는 14일 정보통신부에서 갖는다. 출판은 한국통신문화재단(02-2264-9559)에서 맡았다.

박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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