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중 달랑 몇십명 운동원이 더 많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9일 오후 1시, 경기도 광주 공설운동장 옆 둔치에서 열린 민주당 정당연설회.

유행가 '사랑은 아무나 하나'를 개사한 "경제가 살아난다네. 진념이 해낼거라네"가 대형 확성기를 통해 왕왕 거리며 퍼져나갔지만 행인들의 표정은 그저 무관심하다.

이날 연설회장에 모인 청중은 4백여명(경찰 추산)이지만 절반 이상은 기호 2번 박종진'이란 어깨띠를 두른 선거운동원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실제 유권자는 몇십명이나 될지 모르겠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둔치 밖에서 연설회를 지켜보던 박갑식(朴甲植·35)씨는 "누구를 찍으려느냐"는 질문에 "시장 후보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찍긴 누굴 찍느냐"며 "집으로 배달된 선거홍보물도 뜯어보지 않고 버렸다"고 말했다.

연설회장 주위를 지나던 또 다른 40대 남자는 "그 밥에 그 나물 아니냐"면서 "선거 때만 되면 나타나는 얼굴들이 이젠 꼴도 보기 싫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이에 앞서 오전 11시부터 평택시 송북시장 앞에서 열린 민주당 가두유세 때는 운동원이 한 노점상에게 인사를 건네려 하자 "길 막지 말고 비켜라"며 쏘아붙였다. 또 다른 50대 노점상은 "시끄럽게 하니 장사도 안된다"고 비난했다.

같은 날 오후 4시, 서울 영등포 경방필 백화점 앞길.

한나라당 이회창(會昌)대통령후보와 이명박(明博)서울시장 후보가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트럭을 개조한 유세차량에서 '경제시장 이명박'구호가 큰 소리로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백화점 진열대를 구경하는 쇼핑객들은 고개 한번 돌리지 않는다. 어깨띠를 두른 70~80명이 구호도 외치고 열심히 박수를 유도했지만 '그들만의 잔치'꼴이다.

행인 김재범(28·강동구 천호동)씨는 "정치인들이 떠드는 것을 듣느니 월드컵을 보는 게 훨씬 낫다는 게 젊은 사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8~29일 지방선거 후보등록이 끝나고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됐지만 투표일을 불과 사흘 앞두고도 선거 열기는 싸늘하다. 무관심 차원을 넘어 정치권에 대한 혐오감을 노골적으로 표출하는, 일종의 '유권자 저항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민주당 송훈석(宋勳錫)강원도지부장은 "선거 열기가 전혀 없고 합동연설회에는 몇십명이 나오는 수준인데, 그나마 대부분 동원된 사람들"이라면서 "이번 기회에 시대 흐름에 안 맞는 합동연설회는 없애는 것을 검토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안영근(安泳根)의원은 "유권자들의 무관심이 극에 달해 후보와 후보 운동원만 돌아다니는 게 사실"이라면서 "투표율이 너무 낮으면 선거 이후에 대표성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에 대한 대책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민주당 정장선(鄭長善)의원은 "정치에 대한 혐오감과 월드컵이 겹치면서 선거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유권자의 마음을 돌릴 방법이 없다"면서 "그저 선거에 참여해 달라고 호소만 할 뿐"이라고 말했다. 같은 당 신계륜(申溪輪)의원도 "누가 되든 관심이 없고, 투표를 안 하겠다는 유권자가 너무 많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투표를 독려하라고 당원들에게 얘기하는 게 고작"이라고 말했다.

김필규·신은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