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릴케… 내 인생의 '영원한 스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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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어디 나뿐이었던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세계 명작은커녕 교과서조차 구하기 힘든 어린 시절, 학습 부교재를 가진 친구야말로 선망의 대상이었다. 갖은 너스레 끝에 친구를 집에 데려온 뒤 그 통에 친구의 책을 베끼는 시간은 행복함 그 자체였다.

친구 집에는 월간 소년지 『새벗』 『학원』, 『플루타크 위인전』 등도 있어 친구의 어깨 너머로 읽는 재미는 꿀맛과도 같았다. 수업시간 몰래 책상 밑에 숨겨서 보는 재미를 어찌 한여름 천렵이나 참외 서리에 비길까.

빠듯한 입시 현실에 매달리던 고교시절에는 영어 구문론과 삼위일체가 독서 생활을 앗아갔다. 그나마 다행일까. 목가시인이신 신석정·김해강·백양촌 선생님들의 시낭송과 문장강화는 그야말로 암구명촉(暗衢明燭)이었다.

대학 문리과에서 이양하·송욱·정한모·이어령님을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동서를 넘나들고 고금을 뛰어넘어 키츠·예이츠·롱펠로를 비롯해 박용철·김억의 시정신과 현대문학비평, 연암 박지원의 고전들은 예술혼을 유지하게끔 하는 자극제 역할을 해줬다.

어느덧 지천명의 나이, 이제 황포돛배를 띄우려 하나 나는 여전히 미망에 빠져 있는 듯하다. 남 보기에는 고상한 민속박물관장의 자리에 있지만 쫓기는 삶은 남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삶을 살찌게 하는 교양의 바다를 항해하기보다는 행정보고서를 만들고, 인연을 좇아 문화예산에 매달리다 보니 책 위에 먼지가 날로 쌓여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다망한 일상에 그나마 이 정도의 여유와 사색과 낭만을 가지게 된 것은 오로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다양한 책을 접하는 덕이라 생각한다.

부둥켜안아도 모자랄 사랑하는 여인들, 카뮈와 카프카보다 설렘을 주는 가을의 도보여행 『싯달타』에서 만난 헤세, 고래로 상징되는 인간의 성취와 허무를 발가벗긴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여인의 옷 벗는 소리를 듣게 해준 릴케와 한국의 서정시인들은 삼사십대까지 나의 스승이었던 탓이다.

이즈음 나는 고백하거니와 도통 책을 읽지 못한다. 그러기에 실존도 부실함을 느낀다. 앞으로는 문자향과 서권기를 간직한 지성이 우리사회 문화행정의 앞자리에 앉아야 할 때라고 감히 고백한다. 가을걷이가 끝나는 정년 후에는 논어·맹자를 목표로 소학과 동몽선습이라도 염독(念讀)해야겠다는 아쉬운 투지를 새삼 재확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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