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정의가 강물처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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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종교에 관심 없는 사람도 구약의 예언자라고 하면 이사야, 예레미야 같은 이름을 떠올린다. 실제로 이들은 헤브라이즘의 대표 예언자다. 하지만 그들보다 대선배 격인 아모스라는 사람이 기원전 760년께 활동하면서 히브리 종교의 윤리적 성격을 분명히 했고, 이 때문에 그는 ‘정의의 예언자’라는 이름을 얻었다.

2800년 전 아모스 시대의 이스라엘 사회상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느낌은 착잡하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자에게 다니는 등 성도덕이 붕괴됐고, 상인들은 도량형을 속여 치부했다. 특히 재판관으로 대표되는 권력 가진 자들의 횡포가 막심해서, 뇌물을 받고 결백한 자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가난한 자에게 억울한 판결을 내렸다. 요즘 식으로 하면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판결을 내린 것이다. 그들은 그 대가로 주지육림에 탐닉할 수 있었다.

특이한 것은, 방탕과 사치에 빠졌던 그들도 종교 의식에 관한 한 비상한 열정으로 엄수했다는 점이다. 매일 아침마다 희생 제물을 바치는가 하면 사흘마다 십일조를 바쳤다. 종교적 형식에 대한 그들의 집착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그들은 종교를 외적 형식과 동일시했다. 각종 의식을 풍성하게 거행함으로써 신의 은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신이 제물·순례·찬송·십일조 등 형식과 의식만을 원할 뿐, 그 이외의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신은 도덕적 타락에는 무관심하며, 일상적 의식과 종교적 형식만 제때 실행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믿었다.

아모스는 당대의 주류 종교관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신은 아무리 의식을 실행해도 감동하지 않는다. 아니, 감동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의식은 그 자체가 범죄 행위였다. 신은 순례자를 미워하고 절기를 경멸하며, 제물을 받지 않고 찬송도 듣지 않는다. 아모스는 심지어 신이 성전에서 예배하는 자들을 샅샅이 찾아내 모조리 살육하고 말 것이라는 극언도 서슴지 않는다. 종교 의식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송두리째 날려버리는 말이다. 아모스가 지배계층에 요구한 것은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라’는 것이었다. 의식은 다 쓸데없으니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정의를 실천하라는 것이다.

구약 종교를 지탱하는 두 집단은 제사장과 예언자였다. 제사장이 친(親)체제적이었다면 예언자는 체제 비판적이었다. 이 점은 그리스도교도 마찬가지다. 가톨릭이 제사장 종교에 가까운 편이었다면 종교 기득권에 항의했다는 뜻에서 ‘항의하는 자’ 즉 프로테스탄트라는 이름을 얻은 개신교는 예언자 종교에 가까웠다. 그런데 요즘은 정반대다. 가톨릭이 전향적·개방적인 자세를 취하는 반면 개신교는 보수적·폐쇄적 입장으로 후퇴하고 있다. 이렇게 된 원인은 예언 정신의 실종에 있다.

4·19 혁명 50주년을 맞이한 올해는, 최인훈의 소설 『광장』이 세상에 나온 지 50년째 되는 해이기도 하다. 남한 사회의 부패에 절망한 소설의 주인공 이명준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기독교의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님을 실감한다. “외국 같은 덴 기독교가 뭐니 뭐니 해도 정치의 밑바닥을 흐르는 맑은 물 같은 몫을 하잖아요? 정치의 오물과 찌꺼기가 아무리 쏟아져도 다 삼키고 다 실어가 버리거든요. 도시로 치면 서양의 정치사회는 하수도 시설이 잘돼 있단 말이에요.”

그때나 지금이나 이 땅의 개신교는 정화기능을 하기보다는 한 줄기 탁류를 보태는 모양새다. 한때 역사 공부를 함께 하다가 지금은 서울의 한 교회에서 부목사로 있는 후배를 달포 전에 만났다. 지방 도시에서 부목사를 뽑는다기에 면접을 보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만나자마자 대뜸 ‘한국 교회에 시모니(성직매매)가 성행한다’고 장탄식을 했다. 부목사 임용 조건으로 돈을 요구하더라는 것이다. 일부 비리 사학에서나 하는 짓이 교회 안에서 저질러지고 있다는 말이다. 서양 역사에서 기독교는 타락이 극에 달했을 때 U턴을 하곤 했다. 우리의 때는 언제일까.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
◆약력=경희대 사학과 졸업, 서강대 석사, 경희대 대학원 사학과 박사. 우석대 인문사회과학대 학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