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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봉녕사 주지 묘엄스님:"신세대 스님들 공부 덜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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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우리나라 대표적인 비구니 강원인 경기도 수원 봉녕사에서 지난달 말 주지이자 승가대학장인 묘엄(妙嚴)스님을 만났다. 묘엄 스님은 1947년 비구니로는 드물게 한국불교를 바로 세우기 위해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봉암사 결사에 참여한 인물로 유명하다. 일반인에겐 청담 큰스님의 둘째 딸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올해는 청담 스님의 탄생(음력 10월 20일) 1백주년이 되는 해이고, 묘엄 스님 개인적으로는 고희(음력 1월 17일)를 맞는 해여서 감회가 특별하다.

묘엄 스님은 최근 자신의 출생 배경과 아버지이자 스승인 청담 스님과 성철 스님에게 불법(佛法)을 배우던 시절의 이야기 등을 소설 형식으로 담은 『회색고무신』(시공사·윤청광 엮음)을 펴냈다.

"청담 스님 탄생 1백주년 행사는 서울 도선사 주관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가 거들 수 있는 분야만 돕고 있지요. 학자 열다섯 분의 논문을 거의 다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묘엄 스님의 스승들을 보면 면면이 참으로 화려하다. 청담·성철·경봉·운허스님 등 대표적인 큰스님을 두루 거쳤다. 그렇다면 아버지인 청담 스님에게 특별한 정을 느꼈을까.

"다 똑같은 분인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혈육의 정이란 건 역시 있는 것 같아요. 그걸 정이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청담 스님을 추모하는 일이 머리에 감도는 것은 사실입니다."

『회색고무신』을 보면 청담 스님이 적어도 겉으로는 딸이라고 해서 묘엄 스님에게 따로 정을 쏟았던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가르침에 더 엄격했다는데, 그런 엄격함도 보기에 따라서는 딸에게 쏟은 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수행과 깨침에서는 운허·성철·청담스님 모두가 똑같은 위치였습니다.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성격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이해하기 어렵다면, 같은 법대에서 학위를 받아도 그 법을 적용하는 데 있어서는 조금씩 차이가 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묘엄 스님을 만나던 날은 마침 승가대학의 방학 마지막 날이어서 학승들이 무리지어 향하당(香霞堂)을 찾아 스님에게 인사를 올렸다.

그런데 경북 울진 불영사의 학승 4명 중 한 명이 휴학을 하면서 전화로만 알려온 모양이다. 다른 3명에 대한 묘엄 스님의 꾸짖음이 따갑다.

"권위는 문중이 지켜주고, 권속이 지켜줘야 하는 법이야. 영()이 안 서게 해서는 곤란하지. 세속의 어느 학교에서 그러던가. 대중들에게 인사는 하고 가는 법이지."

50년도 더 전에 육식(肉食)과 대처(帶妻) 등으로 타락한 불교계에서 부처님 법을 실천하겠다던 그 정신을 간직한 스님에겐 영상세대들이 아무래도 못마땅할 듯하다.

"봉암사 결사 때는 한 예로 목바루를 버리고 옹기바루를 썼어요. 하도 무거워 공양할 때 여기저기서 '후유' 한숨 쉬는 소리가 터져나왔어요. 그것이 지금 다시 목바루로 다 바뀌었습니다."

4년 과정인 봉녕사 승가대학에서는 현재 1백30여명이 공부하고 있다. 1학년 때는 한문을 주로 익혀 승려 생활의 사상 체계를 세운다. 2학년은 『서장』 『도서』 『절요』 『선요』 등 4권을, 3학년은 『능엄경』과 『기신론』 『금강경』 『원각경』을, 4학년은 『화엄경』을 뗀다.

이 과정을 묘엄 스님은 1952년부터 4년 동안 배운 끝에 56년에 경봉 스님으로부터 전강(傳講)을 받아 비구니 강원 강사가 되었다.

철부지 열네살에 삭발한 후 11년 만의 일이었다. 그 후 운문사 등을 거쳐 봉녕사에는 71년에 들어왔다.

묘엄 스님은 99년에 율장 등 불교의 계율사상을 고취하기 위하여 율원을 세웠지만 지원하는 학생이 적어 아쉽다.

"율원에서 가르치는 것들이 어려워서도 그렇겠지만, 뭔가에 매이는 걸 싫어하고 자유를 추구하는 젊은이들의 맘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지요. 배워놓고 그것을 지키지 않을 경우 허물이 더 커지는 법이니까요."

요즘 일부 지식인 사이에는 한국불교가 지나치게 참선에 매달린 나머지 현실을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부처님의 법을 배우다 보면 원력(願力)이 생깁니다. 지속적으로 원하는 것이 나타난다는 뜻이죠. 이걸 해야겠다는 소신 말입니다. 산중에서 수행만 하겠다든지, 아니면 배운 것을 그대로 사람들에게 전파하겠다든지 길이 정해집니다. 그러니 수행만 한다고 나무라는 것은 불교를 깊이 이해하지 못했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스님에게 현대인들에게 절실한 가르침을 하나 청했다.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당나귀에 안장을 얹어 부처님을 모셨더니 길가던 사람들이 당나귀를 향해 모두 절을 하는 거에요. 그러자 당나귀가 착각을 한 거죠. 자기가 훌륭해서 절을 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당나귀의 맘속에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일었어요. 그래서 마부가 아무리 코를 잡아 끌어도 두 다리로 버티고 서서 움직이지를 않는 겁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마부와 시주(施主)가 다른 당나귀를 끌고와 부처님을 옮겨 싣고 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분수를 모르면 '버림받은 당나귀' 꼴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늘 자신을 알고, 겸손하게 살자는 뜻이다.

정명진 기자

우리 종교가 오늘같은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크고 작은 사연들이 있었다. 그 사연의 중심에 섰던 인물들을 찾아 그 때를 되돌아보며 현대인에게 필요한 삶의 자세들을 들어본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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