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풍국제그룹 외자유치 ‘허풍’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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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한이 외자 유치 목적으로 지난 1월 설립한 조선대풍국제그룹의 실체를 둘러싼 의혹이 커지고 있다. 북한은 평양과 홍콩은 물론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까지 모두 4개의 ‘대풍’ 이름이 들어가는 회사를 만들었지만 지분 거래와 대표 임명 등의 과정에 석연치 않은 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또 대풍그룹의 총재인 박철수는 남북교역 과정에서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으로 2002년 7월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의 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평양 대풍국제투자집단이 버진아일랜드의 대풍국제투자공고유한공사에 2000만주를 넘긴 내용이 담긴 2008년 홍콩 대풍국제투자공사 사업신고서.

4일 본지가 입수한 홍콩 대풍국제투자공사의 2008년 사업신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에 투자했던 평양 대풍국제투자집단은 지분 2000만 주(주당 1홍콩달러)를 그해 9월 8일 파트너 회사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의 대풍국제투자공고공사에 넘겼다. 이에 대해 금융전문가들은 “평양 대풍국제투자집단이 전체 지분을 조세 회피처인 버진아일랜드 쪽에 양도한 것은 홍콩 대풍국제투자공사를 북한과 무관한 순수 외국계 회사로 보이도록 해 대북 금융제재를 피하려는 수법”이라고 분석했다. 홍콩 대풍국제투자공사의 주소지가 홍콩 회계법인의 주소와 동일한 건 ‘페이퍼 컴퍼니’(위장기업)라는 결정적 증거란 얘기다.

대표이사로 홍콩인 구카이런을 올려놓은 것도 홍콩 회사로 가장하기 위한 것이란 지적이다.

대북 소식통은 또 “북한이 홍콩 대풍국제투자공사를 설립한 것은 2006년 노무현 정부가 함남 단천의 광물을 남북 합작으로 개발하는 데 관심을 보이자 거액을 조속히 투자하게 압박하려는 차원이었다”고 말했다. 북한이 조선족 동포인 박철수 등을 내세워 북한 회사들과 계약하는 것처럼 함으로써 마치 ‘홍콩 회사가 북한에 투자하는 것’같이 자작극을 벌였다는 것이다. 소식통은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과 김양건 노동당 통전부장 등 실세들이 박철수의 방북 때마다 만나주고 각종 특혜를 제공해 외부에서 박철수가 거물급 인사로 비춰지게 했다”고 설명했다. 정부 당국자는 “ 북한 고위층의 갈등과 대풍그룹의 부진한 실적을 볼 때 박철수는 ‘제2의 양빈’(2002년 신의주 경제특구 개발을 맡았다 희생된 중국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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