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역사 극복하고 화해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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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국과 일본이 공동주최하는 월드컵이 마침내 31일 개막됐다. 올림픽도 치러낸 두나라는 단독 개최를 했어도 잘 해냈을 것이다. 공동개최가 된 것은 단독개최를 놓고 치열하게 맞붙은 두나라가 세계축구협회(FIFA)의 조정에 따랐기 때문이다.

그 뒤 두나라는 월드컵 로고에서부터 국명표기 순서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제를 놓고 끝없이 다툼을 벌였다. 한국과 일본이 사이좋게 지낼 수는 없을까?

한국이 일본에 대해 갖는 분노의 뿌리는 깊다. 제국주의 일본은 1910년부터 36년간 한국을 강점하고 한국 여성 20만명을 일본군의 성노예로 만드는 등 가혹하게 통치했다. 한국은 45년 독립했지만 50년이 훨씬 지난 오늘까지 "일본은 한번도 제대로 사과한 적이 없다"며 분개하고 있다.

최근엔 식민지에서 벌인 잔학행위를 은폐한 일본의 일부 역사교과서가 검정에 통과하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도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해 한국인의 분노에 불을 댕겼다. 이런 분위기는 대일(對日)관계를 성숙시키려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노력을 허사로 만들었다. 그러나 왜곡 역사교과서를 채택한 일본 학교가 거의 없다는 사실은 한국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일본은 과거를 신속하고 깨끗하게 반성한 독일을 본받아야 하지만 한국도 분을 삭힐 줄 알아야 한다. 많은 나라가 식민지 경험을 했지만 대부분 오래 전에 그것을 극복했다.

한국은 이중기준을 갖고 있다.'일본이 하는 짓은 모두 틀리지만 중국이 하는 일은 모두 옳다'는 게 한국인의 시각같다. 일본 대사관에 진입했다 중국 경찰에 끌려나온 탈북자 가족의 비극을 놓고 한국 언론은 탈북자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거부한 중국의 국제법 위반보다 일본의 이중성과 모호한 외교적 자세를 더 강하게 비난했다.

한국은 중국을 문명의 원조로 숭상하면서도 오랜 굴욕적 종속관계는 잊고 있다. 옛날 원수에게는 마음을 풀고 직전의 원수만 증오한다면 그것은 왜곡된 자세다.

현 추세대로라면 중국은 곧 미·일을 따돌리고 한국의 최대 무역파트너가 될 전망이다. 많은 한국인은 일본·미국보다 중국과 어울리는 게 더 편안해 보인다는 인상을 준다. 이것이 현명한 선택인가. 중국이 앞으로 수십년사이 어떻게 변할지는 불투명하다.'동진정책'을 지역 깡패들에게 맡기다시피한 러시아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나라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엔 친구가 필요하고 일본도 그렇다.

무엇이 한·일의 화해를 막는 장애물인가. 두나라엔 공통점이 많다. 두나라는 유·불교문화를 공유한다. 일본은 이를 한국으로부터 전래받았다. 양국은 경제적으론 경쟁하지만 자유무역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선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한국이 더 빠르게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개혁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그 방법은 일본의 경제발전을 모방한 것이다. 역사는 극복돼야 한다. 좋은 선례가 있다. 75년동안 원수처럼 싸워온 독일과 프랑스는 1945년 동맹을 맺어 유럽연합의 토대를 만들었다. 한국과 일본도 그들처럼 화해해야 한다.

정리=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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