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제2부 薔薇戰爭제4장 捲土重來 :十步 전진을 위한 一步 후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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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남이 나의 얼굴에 뱉은 침은 닦는 법이 아니라 저절로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법이란 김양의 말에 정년이 놀라 물어 말하였다.

"침을 닦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자 김양이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침을 닦으면 침을 뱉은 사람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오."

"하지만 그자가 대장군 나으리의 얼굴에 침을 뱉어 모욕하지 않았나이까. 그랬으니 마땅히 그의 뜻을 거슬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거스른다는 것은 곧 그의 뜻을 받아들인다는 것일세."

"어찌하여 그렇습니까.거스른다는 것은 역(逆)이며, 받아들인다는 것은 순(順)인데, 어찌하여 역과 순이 같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김양이 웃으며 말하였다.

"물론 그는 내 얼굴에 침을 뱉어 모욕을 하였소이다. 그것이 그의 뜻이외다. 그러므로 그것을 닦으면 내가 그의 모욕을 받아들인 것이 되며, 침이 마를 때까지 참고 기다리면 그의 모욕을 내가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그는 자연 허공에 대고 침을 뱉은 것에 지나지 않소이다."

"그렇게 되면 그 모욕은 누구의 것이 되나이까."

"내가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김양은 껄껄 소리 내어 웃으며 말하였다.

"모욕은 자연 그가 자신의 얼굴에 뱉은 것이 될 것이나이다."

타면자건(唾面自乾).

'얼굴에 묻은 남이 뱉은 침은 스스로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는 뜻으로 모든 처세에는 굴욕을 참고 견디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말이었던 것이다.

정년은 김양의 이러한 행동을 통해 그가 무서운 야심을 가진 범상하지 않은 인물임을 간파하였다.

어쨌든 이로써 김양이 이끄는 평동군은 출정한 지 한달도 안돼 무주와 남원에 이르는 전라도 일대를 장악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눈부신 전과에도 불구하고 김양은 청해진으로의 철군을 명령하였다. 이에 정년을 비롯하여 여러 군장들은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으로 물어 말하였다.

"어찌하여 철군하여 돌아가시라 하시나이까. 대장군께서 말씀하셨던 대로 지금 아군의 사기는 대나무를 쪼개듯 파죽지세의 기세가 아니나이까."

정년은 자신을 '파죽지세'의 명장 두예로 비유했던 김양의 말을 빌려 항의하여 말하였다.

"두예는 이렇게 말하였나이다. 대나무란 처음 두세마디만 쪼개면 그다음부터는 칼날이 닿기만 해도 저절로 쪼개지는 법이라고 말하였나이다."

김양의 말은 사실이었다.

대나무는 처음 두세마디를 쪼개는 것이 어렵지 그다음부터는 칼날만 닿으면 쪼개진다고 하여서 '영도이해(迎刀而解)'라 하지 않았던가.

"이제 무주와 남원을 점령함으로써 처음 두세마디의 대나무를 쪼갰나이다. 그러므로 이제 더 무엇을 망설이겠나이까. 이대로 서라벌까지 쳐들어간다면 저절로 대나무처럼 쪼개지지 않겠나이까. 어찌하여 대장군나으리께오서는 이 절호의 기회를 버리려하시나이까."

그러나 김양은 단호하였다.그는 분명하게 대답하였다.

"지금 군사들은 오랜 전투로 피로하고 병마들은 지쳐있소이다. 이젠 돌아가 휴식을 취할 때인 것이오."

이때의 기록이 사기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 다시 내치어 남원에 이르러 신라군과 싸워 이겼으나 군사들이 오래 피로하였으므로 다시 청해진으로 돌아가 병마를 휴양시켰다."

이로써 평동군은 큰 전과를 올리고 청해진으로 일단 철수하였다. 물론 그 철군의 이유가 군사들이 오랜 전투로 피로가 쌓여있고, 말들이 지쳐있기 때문이라고 사기에 기록되어있으나 이것은 겉으로 내건 명분에 지나지 않고 진짜 숨은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은 오래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김양의 간교한 계략, 즉 십보의 전진을 위한 일보의 작전상 후퇴 때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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