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이미지로 일체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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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요즘 한국 축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화두가 '붉은 악마'다. 붉은 악마는 6년 전 몇몇 사람이 단체로 프로축구를 관람하려고 모인 것이 시초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중에는 국가대표팀을 후원한다는 명분 아래 공식적인 모임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지금은 회원수만 해도 11만명이 넘는다. 이익집단이 아닌 붉은 악마가 이렇게 거대한 공식 조직으로 발전하게 된 이유를 일곱가지 정도로 짚어볼 수 있다.

첫째, 모임의 명분이 오직 한 가지라는 것이다. 한국 대표팀을 사랑하자는 목적이 유일한 명분이다. 잠재적인 회원들 사이의 분명하고 공통적인 관심이 오직 한 가지로 귀결된다는 점은 모임의 정체성을 명확히 해준다.

둘째, 모임의 명칭과 상징성이 분명하고 강렬한 기호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 모임은 초창기 '그레이트 한국 서포터스 클럽(Great Hankuk Supporters Club)'이라는 다소 복잡한 단어 나열식 명칭이었으나, 나중에는 회원들의 합의하에 붉은 악마로 개칭됐다. 붉은 악마라는 명칭은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한국팀이 4강에 올랐을 때 당시 외국 언론들이 우리 대표팀을 붉은 악령(Red Furies)으로 호칭했고, 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붉은 악마로 표기했으며 이를 다시 'Red Devils'의 영어로 표현한 데서 유래하고 있다. 명칭 때문에 일부 기독교단체가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강렬한 이미지를 심기 위한 하나의 기호로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역설적인 명칭이 오히려 매력이 된다.

셋째, 한국 축구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인구가 많았고 그래서 잠재적으로 회원이 될 만한 사람이 많았다는 점이다.

넷째, 인터넷의 역할이다. 초창기 붉은 악마 구성원들이 PC 동호회에서 처음 만났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고, 지금은 어엿하게 홈페이지까지 운영하고 있다. 막강한 의사소통 수단이 있기 때문에, 한번에 단체응원을 하는 회원을 5천여명이나 모을 수 있다.

다섯째, 회원 가입의 자율성이다. 강제규정을 최소화하면 회원들이 조직활동의 성격을 여가나 취미 수준으로 느끼게 된다. 만약 복잡하고 어려운 강제조항이 많다면 회원은 금방 줄어들 것이다. 최근에 회비 규정을 없앤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여섯째, 모임의 단체행동이 일치된 경험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같은 유니폼을 입고, 동시에 뿔피리를 불어대고, 같은 모션으로 응원을 한다. 강렬하고 일치된 집단경험은 강한 집단 정체감을 만들어낸다.

마지막으로, 붉은 악마는 미래지향적인 조직 성격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체적으로 운영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개선방안을 제시하며, 포럼과 게시판을 운영하고 늘 장래를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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