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성을 일깨운 詩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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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시가 사람을 바꿀 수 있다."

미문(美文)을 잘 쓰는 것으로 유명한 고려대 불문과 김화영 교수는 최근 한 교도소 재소자와 편지를 주고 받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사연은 김교수가 본지에 연재했던 '시가 있는 아침'을 모아 책으로 낸 지난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감』이란 제목의 이 책은 시를 엄선해 소개하고 시 한 편마다 해설을 붙인 일종의 시선집이다. 출간 당시 수제본이 30만원에 팔리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보도를 접한 한 재소자가 김교수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시를 읽으며 마음을 정화시키고 싶은데 교도소에선 책을 쉽게 구하기 어려우니 한 권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다.

김교수는 삐뚤삐뚤한 글씨체에 진솔함이 묻어나는 그 편지를 받고, 건강 유의하고 시를 보며 마음을 잘 다스려 보라는 취지의 답장을 책과 함께 보냈다.

김교수는 "나에겐 정말 뜻밖의 편지였다. 그 재소자가 얼마나 절실한 마음이었을까 하는 생각에 바로 책을 보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프랑스에 다녀온 김교수는 지난 3월 말 그 재소자로부터 다시 장문의 편지를 받게 됐다. 이번엔 그 내용이 자못 감동적이었다. 편지 내용은 이랬다.

"인간이 인간다워지려면 밥만 먹고 살 수 없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눈으로 아름다운 것을 봐야 하고 피부로 부드러운 감촉을 느껴야 합니다. 또 지식과 기술, 학문 등 여러가지 배움의 식사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무턱대고 보낸 편지에 귀한 시집과 답장까지 보내줘 최소한 동물이 아닌 인간의 대우를 받게 돼 감사하다는 말을 몇 차례 되풀이했다고 한다.

결론은 그가 시를 읽으며 인생을 다시 살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지금 징역을 살고 있지만 앞으로는 착실한 인간이 되어 사람 냄새를 풍길 수 있는 삶을 갈구하며 살아가겠습니다."

김교수는 "시는 자기반성적 언어가 많은 문학 장르이기 때문에 삶을 성찰하는 데 설교조의 에세이집보다 더 낫다"며 "교도소야말로 시가 보급돼 널리 읽혀야 할 곳"이라고 말했다.

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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