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신용평가사 평가 검증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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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우리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10월 미국 하원위원회 청문회에서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의 한 직원이 썼다는 전자우편 내용이 공개됐다. 이 직원은 신용도가 의심스러운 모기지담보증권(MBS)에 긍정적인 신용등급을 매긴 뒤 임원에게 이런 내용의 전자우편을 보냈다. 당시 신용평가가 허술하게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신용평가사들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는지가 도마에 오른다. 국내에서는 금융감독원이 신용평가사의 신용도 평가가 적정했는지를 따지기 위해 메스를 들이댄다. 해외에서는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경쟁업체인 무디스를 ‘부정적 관찰’ 대상에 올렸다. 신용평가를 허술하게 했다는 이유다. 이는 현재 ‘A-1(상위 두 번째 등급)’인 무디스의 단기 채권 등급을 하향 조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신용평가사에 메스=기업이나 금융상품 등에 대한 신용평가사의 평가가 제대로 됐는지 논란은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신용평가사의 평가 결과가 국제 기준에 맞지 않거나 허술하게 이뤄졌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래서 금감원이 국내 3개 적격 외부신용평가회사(ECAI)가 평가를 제대로 했는지 따져보기로 했다. ECAI란 바젤위원회가 제시한 국제기준을 충족한 신용평가사를 말한다. 한국에는 한국신용평가·한국신용정보평가·한국기업평가가 ECAI로 지정돼 있다.

금감원은 3개 ECAI가 평가한 기업의 신용등급별 부도율이 국제적 기준인 바젤위원회의 신용등급별 부도율 범위에 있는지를 점검하기로 했다. 또 이들 회사가 신용평가방법론 같은 중요한 사항을 변경하거나 지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유가 발생하면 금감원에 보고하도록 했다.

금감원은 이들 기관의 신용평가 결과가 국제 기준에서 벗어나거나 지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단되면 개선 계획을 제출토록 하고, 이후에도 미비점을 해소하지 못하면 ECAI 지정을 취소할 방침이다. 현재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도 신용평가사 감독이 의제로 다뤄지고 있다.

◆부메랑 맞은 신용평가사=특정 업체의 사정이 어떤지는 라이벌 업체가 잘 아는 법이다. S&P는 무디스를 신용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아 앞으로 소송을 당할 위험이 크다고 본다. S&P는 “미국의 금융규제 개혁 입법에 따라 무디스가 소송을 당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미국 의회가 추진 중인 금융 규제 개혁안에 따르면 신용평가사가 기업이나 금융상품에 대한 평가를 허술하게 해 투자자가 손실을 보면, 투자자는 신용평가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이런 위험은 무디스에만 있는 게 아니다. S&P·피치 같은 국제 신용평가사 모두에 해당되는 문제로 영업환경이 나빠진다는 얘기다. 한국금융연구원의 서정호 연구위원은 “금융 개혁안이 통과되면 소송 부담이 늘게 돼 신용평가사들의 수익이 나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 대가는 소송과 영업환경 악화라는 부메랑이 돼 신용평가사를 위협하고 있다.

김종윤·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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