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43>제101화우리서로섬기며살자 : 42. 목사가 된 두 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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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큰아들 요셉은 1989년 미국 트리니티 신학대학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우리 교회에서 교육목사로 일한 적이 있다. 그때 요셉은 목회자회의 시간에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피력하면서 나의 목회활동을 비판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아들이 지적한 것은 내가 이론과 실제의 괴리를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공방전을 지켜본 다른 목회자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전했다.

당시 나는 아들에게 이렇게 못박았다.

"네 용돈을 네가 벌었던 것처럼 네 사역은 네가 개척해야 한다. 절대로 아버지의 후광 덕을 볼 생각은 하지 마라. 우리 교회에서 훈련받는 것까지는 괜찮지만 이 교회에서 목회할 생각은 하지 마라."

나중에 요한에게도 똑같은 말을 했는데 "그런 걱정하실 필요 없다"던 아들이 둘 다 교회를 개척해 담임목사로 일하고 있다.

요셉이 95년에 개척한 수원원천침례교회는 지금 교인이 1천명에 이른다. 요한은 미국 북침례교신학대학에서 목회학 박사학위를 받고 97년에 귀국해 대전극동방송에서 잠시 일하다 98년 대전에서 함께하는교회를 개척했다. 이 교회의 교인은 2백50명 가량이다.

요셉은 한국기독봉사회 대표를 맡고 있고, 요한은 윌로우 크릭 코리아(미국 시카고 윌로우 크릭교회 한국지부) 이사를 맡고 있는데 두 아들에겐 나 못지 않게 국내외로부터 집회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 나는 미국에서 집회를 할 때면 아들을 동행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성인을, 아들들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집회를 여는 것이다. 아들들은 재미동포 청소년을 위한 집회를 많이 개최했다. 70년대 초에 이민이 늘어나면서 많은 한국인이 미국 본토에 자리 잡았다. 특유의 근성으로 낯선 땅에서도 한국인들은 억척스럽게 뿌리를 내리는 데 성공했지만 문제는 자녀들이었다. 80년대 중반, 미국사회에 동화하지 못한 한국 청소년들이 갱을 조직해 문제가 되었다.

그렇게 방황하는 한국 청소년 앞에 아들들이 나타나 한국에서 혼혈아로 겪었던 어려움을 토로하면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청소년들이 울며 회개하고, 새 삶을 찾았다.

한국에서 힘들게 자란 두 아들이 그런 일에 쓰임을 받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섭리를 다시금 깨달았다. 아들들은 요즘 제3세계의 선교사 자녀들과 동포 자녀들을 위한 사역에도 열정을 쏟고 있다. 이 아버지보다 더 바쁘게 움직이는 아들들을 보면서 나는 늘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두 아들은 어릴 때 자신들을 미국에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며 감사해한다. 그 말을 듣고 우리 부부도 판단이 옳았다며 흐뭇해했다. 만약 혼혈아로 놀림받는 게 안쓰러워 아들들을 미국 외가에 보냈더라면 결국 미국에서 활동하는 반쪽 목회자가 되었을 거라는 얘기였다.

며느리와 사위는 모두 초등학교 때 미국에 간 재미교포 2세들로 한국어와 영어에 능통하다. 나는 한국인 며느리를, 아내는 미국인 며느리를 원했는데 우리 며느리들은 미국과 한국의 정서를 모두 갖고 있어 우리 부부를 만족시키고 있다. 딸 애설이는 미국 유학 시절 만난 재미동포 2세와 결혼하여 미국 미네소타주에 살고 있으며, 사위는 미국 금융회사 부사장이다.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나에게 '자녀들을 잘 키운 것이 부럽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 말을 들을 때면 나는 모든 공을 아내에게 돌린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부의 일치다. 아빠가 아이를 야단치는데, 엄마가 옆에서 "애 기죽게 왜 그래요?"하면 아이는 혼란을 일으킨다. 아내는 내가 아이들을 혁대로 때릴 때 가끔은 심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권위와 자녀들이 판단기준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아이들 앞에서 나를 타박한 적이 한번도 없다.

내가 아이들에게 체벌을 가한 것은 초등학교 때까지다. 체벌로 분명한 기준을 갖게 만들면 그 다음부터는 대화가 가능하다. 나는 아이들을 때린 뒤 반드시 끌어안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앙금이 남을 수 있다. 아내는 그 다음 과정을 잘 맡아주었다. 아내는 단 한번도 아이들에게 매를 대지 않고 늘 온화한 웃음으로 아이들을 감싸안았다.

요셉은 혁대로 맞을 때 아버지가 직접 손으로 체벌하지 않는 게 좋았고, 잘못했을 때 곧바로 지적받았기에 올바른 기준을 가질 수 있었다며 자기 아들도 혁대로 체벌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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