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수 철학자의 '건강 조언' 가슴에 와닿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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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다 읽은 뒤에는 곧바로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춤을 추고 발로 뛴다." 독서의 즐거움에 대해 중국 송나라 시대 저명한 유학자의 이같은 문구처럼 절절한 표현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이 유학자의 논어에 대한 일종의 서평은 천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에도 울림으로 남는다.

매주 북섹션에 올릴 신간의 옥석을 가리며 그 같은 책이 나오길 기대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행복한 책읽기 그 자체다. 하지만 왜 그 책을 선정해 읽기를 권하느냐는 질문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자를 일상적으로 괴롭히는 난제다. 이번주의 신간 중 『철학자 가다머 현대의학을 말하다』(한스 게오르크 가다머 지음, 이유선 옮김, 몸과마음,1만5천원)는 그런 질문에 대한 성찰의 계기다.

저자인 현대 서양철학의 거장 가다머는 건강한 삶이라고 하는 인간의 본질적 주제를 천착하며 지식과 정보가 유통되는 과정에 대한 인문학적 반성을 제기하고 있다. 1백2세를 일기로 두 달 전인 2002년 3월에 타계한 최장수 철학자가 93세에 펴낸 건강 이야기라는 점부터가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현대 해석학의 지평을 크게 확장시켰다고 평가받는 가다머는 이 책에서 "자연의 평형을 유지하는 것이 건강하게 사는 길"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한다. "건강은 개인마다 편차가 심한 것이어서 질병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건강한 삶을 사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까지 말한다. 인간의 몸에 대한 실존적 고민 앞에서 동서양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건강에 편차가 심하다'는 것은 절대적 표준이 없다는 뜻이다. 의사가 건강한 신체라는 어떤 유토피아적 표준을 설정하고 거기에 환자를 뜯어 맞출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그런 기준이 있다면 그것은 가다머가 볼 때 선입견일 뿐이다. '질병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응급 수술이 시급한 사람에게 '질병과 함께 살라'고 하는 것은 한방 얻어 맞기 충분한 망발의 코미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강함에 대해 강박적으로 고민을 하며 사는 보다 많은 사람들의 경우에 이 말은 유한한 인간의 본질을 투시하게 하는 깨달음의 지혜일 수 있다.

메시지 전달자와 수용자는 모두 선입견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열린 대화의 장에서 이해의 지평을 넓혀가야 한다는 가다머의 해석학은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절대적 기준이 없다는 것은 서양 근대의 이성 만능주의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기준을 세우지 않고 상대주의를 적용하는 것은 가치의 진공상태를 초래하며 일의 효율성을 크게 떨어뜨리는 난점에 다시 부딪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강압적 권위주의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권위다.

가다머는 "진정한 권위는 전문적 지식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환자의 삶 전체와 전인격적 관계를 맺으며 환자의 질병에 개입할 때 생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전문성과 대화라는 두 바퀴가 권위를 생성시키며 사회를 건강하게 만든다고 볼 수 있겠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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