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사실주의 작가 이상원 초대전 갤러리 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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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추수가 끝난 논바닥에 굵게 패어있는 경운기 자국. 바닷가 갯벌에 남은 어지러운 발자국, 주름살 가득한 촌로의 얼굴. 논이나 갯벌 위의 흔적은 이내 지워질 것이고, 고령의 노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한국화가 이상원(67)씨의 회화는 소멸해 버릴 존재의 현장을 극사실주의 회화로 포착해낸다.

'향(鄕)'연작은 진흙이 말라터진 틈새, 볏짚 하나하나의 윤곽과 음영을 과장된 존재감으로 묘사하고 있다. 별것 아닌 풍경의 단면을 정밀 확대사진처럼 제시한 그림에서 느껴지는 것은 낯선 아름다움과 작가의 따스한 시선이다. 갯벌과 논바닥 등을 찾아다니며 스케치하는 작가는 "이것들은 꼭 내 자신의 모습 같다"고 말한다.

'동해인'연작은 80세가 넘는 노인들의 구부정한 어깨와 주름살 가득한 얼굴, 손마디를 세밀하게 포착하고 있다. 힘겨운 노동으로 평생을 보내면서 삶의 갖은 풍상과 곡절을 겪었을 노인이다. 거기서 보이는 것은 그러나 연민이나 회한이 아니다. 가장 정직하게 삶과 맞닥뜨려온 자의 모습은 당당하며 그 시선은 아주 멀리까지 닿아 있다.

이상원씨의 초대전이 22일부터 6월 10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 상에서 열린다. 두꺼운 한지에 유채와 먹을 함께 사용한 근작 35점이 1,2층 전시장을 가득 메운다.

작가는 영화관 간판쟁이 출신으로 40세가 돼 독학으로 순수미술에 입문한 입지전적 인물. 동아일보사 동아미술제에서 두차례 동아미술상(1978년 제1회, 84년 제2회)을 받았으며 해외미술관 초대전시로 명성을 얻었다. 98년 러시아 연해주 주립미술관, 중국 베이징 중국미술관을 거쳐 99년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의 국립러시안 뮤지엄에서 동양인으로서는 최초로 전시를 했다. 지난해엔 중국을 대표하는 상하이 미술관에서 초대전을 열어'진정한 수묵의 현대화를 이룩했다"는 현지의 평가를 받았다. 02-730-0030.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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