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들이 책 즐길 수 있어 보람" 녹음도서 만드는 신군자·우옥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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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마음의 눈을 열어주는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이 생명이죠. 책을 단순히 줄줄 읽어내려 기계음으로 바꾸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충남 아산시 모종동의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충남지부에서 녹음도서를 제작하는 신군자(申君子·57·(左))씨와 우옥순(禹玉順·55)씨.

이들은 3년째 시각장애인을 위해 책을 읽고 있다. 일주일에 두번 1.5평짜리 방음실에서 세시간씩 녹음한다. 무협지부터 소설·시·수필 등 문학작품 및 사회과학서적까지 시각장애인들이 원하는 모든 책을 읽는다. 이들이 만든 녹음도서는 충남지역의 7천여 시각장애인에게 대여된다. 무협지의 경우 협객의 칼날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는 물론이고 상대방의 비명과 날카로운 표창 소리까지 모든 효과음이 능숙하게 표현된다.

"봉사라기보다 내가 느끼는 즐거움이 더 커요. 감명깊게 읽었던 소설을 내 목소리를 통해 여러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어 너무 기뻐요."

이들이 2000년 4월부터 시각장애인연합회의 녹음도서 제작에 참여한 이후 지금까지 녹음한 '책'은 60여권에 이른다. 최근 申씨가 녹음한 무협소설 『강호무정』 은 최근 몇달간 대여순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현재 禹씨는 몇년 전 인기를 끌었던 TV드라마를 소설로 옮긴 『가을동화』 를 테이프에 담고 있다. 그래서 요즘엔 20대 여주인공인 '은서'가 된 기분이라며 "며느리를 볼 나이에 다시 젊어지는 것 같다"고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처럼 녹음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30~50대 주부 12명으로 『월간문학』 을 통해 등단한 시조시인인 申씨를 비롯해 대부분이 항상 책을 가까이 하는 '문학소녀'들이다.

시각장애인연합회 임대원(52·1급 시각장애)충남지부장은 "듣는 이들이 목소리 주인공을 소설 속 주인공과 동일시하므로 이들의 역할은 정말 중요하다"며 "이곳 녹음도서를 한번 들어본 일반인 중에도 대여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충남지부는 녹음도서 8백여권을 갖춰놓고 시각장애인이 점자로 된 목록에서 골라 신청하면 무료 우편으로 배달해준다. 041-541-1101.

아산=조한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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