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맨해튼 '휠체어 요리사'의 혼이 밴 음식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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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5면

휠체어를 탄 미국의 요리사 로렌스 스콧(33·뉴욕 출신).

몸 성한 사람에게도 쉽지 않은 직업인데 불구의 몸으로 가능한 것일까. 그런데 요즘 뉴욕의 식도락가들은 맨해튼에 있는 그의 식당 '레스토랑 로렌스 스콧'에 줄을 서고 있다. 그의 혼이 담긴 요리를 맛보기 위해서다.

프랑스의 유명 조리학교를 졸업하고 파리의 여러 식당을 거치며 경험을 쌓은 그는 꿈에도 그리던 요리의 천재 알랭 뒤카스의 레스토랑에 취직을 하게 된다. 그것이 6년 전. 그런데 교통체증으로 파리의 길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아까워 오토바이를 구입한 것이 화근이었다. 사고로 척추를 다쳐 허리 이하를 꼼짝할 수 없게된 것이다.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 요리사의 꿈도 포기해야 했다.

미국 뉴욕으로 돌아온 그는 오로지 생존을 위한 재활에 매달렸다. 초인적인 노력 끝에 이듬해 뉴욕시 마라톤의 휠체어 부문에서 2등. 접어두었던 요리사에의 꿈도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한 부호가 그의 실력을 인정해 자신의 개인 요리사로 채용했다. 만찬이 끝나면 휠체어를 탄 그를 불러 자랑스럽게 손님에게 소개하곤 했다. 스콧은 오너 셰프(주인 겸 요리사)가 된 지금도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

현재 그의 식당에는 지하와 1층을 연결하는 휠체어 이동장치가 있을 뿐 다른 어떤 특수 설비도 없다. 휠체어에 앉은 채 요리를 할 수 있도록 스스로 훈련하고 적응한 때문이다.

그의 식당을 찾는 사람들은 "역경을 극복한 그의 요리는 맛을 뛰어 넘는 진실함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스콧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하다.

"그냥 요리사가 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휠체어에 의지한 요리사라니 믿기지 않겠지요. 하지만 저는 요리를 하며 하루하루가 저물 때마다 무한한 행복을 느낍니다. 허리 위로는 다치지 않아 두 팔이 온전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요. 제가 요리를 사랑하는 것을 알고 하느님이 불행 중 남겨주신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요리는 내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요리 때문에 살고 있다'는 그의 요리를 먹는 사람은 그래서 덩달아 행복해진다.

홍혜선(푸드&와인 컨설턴트·sunnyhong2@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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