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희망의현장>9.거창 샛별초등교-학습부진아 담임이 개별 지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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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지난달 29일 오후 1시 경남 거창군 거창읍 샛별초등학교 2학년1반 교실. 종례 시간인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마치고 아이들이 우르르 교실을 빠져나가자 10명의 아이들이 책가방을 챙겨들고 칠판 앞쪽으로 모여 앉았다. 학습이 조금 처지는 학생들에게 담임교사가 개별지도를 하는 '거북이 공부'시간이었다.

담임인 강태수 교감이 미리 준비한 수학 학습지를 나눠주자 아이들이 재잘거림을 멈추고 문제풀기를 시작했다. 강교감이 아이들 사이에 앉아 손가락까지 꼽아가면서 문제풀이를 도왔다. 야단치는 소리 대신 간간이 교사와 아이들의 웃음이 터져나왔다.

"처음엔 수학이 어려웠는데 선생님이 쉽게 가르쳐주니까 잘 알게 됐어요." 40여분간의 개별수업을 마친 권모(8)양의 표정은 밝았다.

강교감은 "진도가 느린 아이들에게 더욱 깊은 애정을 가지고 방과후 개별지도를 함으로써 처지지 않고 함께 가도록 한다는 게 샛별초등학교 교육의 핵심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모두가 함께 가는 학교=1964년 개교한 샛별초등학교는 각 학년이 2학급으로 구성된 소규모 학교로, '모두가 함께 가는 학교'를 만드는 데 힘을 기울인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학습부진아에 대한 방과후 개별지도 활동이다.

주중식 교장은 "누구나 학습능력이 똑같지는 않다"며 "학습부진아에게 담임교사가 직접 개별지도를 해줌으로써 한사람도 빠짐없이 초등학교에서 익혀야 할 것을 배우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습부진아 개별지도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방과후에 하며 저학년은 국어·수학, 고학년은 수학 중심으로 지도한다. 학습 부진아 지도를 잘하기 위해 교사끼리 수시로 사례 중심의 연수도 하고, 매달 한번씩 부진아의 학습 진척 점검도 한다.

주교장은 "개별지도 성과가 단기간에 나타나는 게 아니어서 심리적으로 힘겨울 때도 있지만 담임교사들이 모두 열의를 갖고 지도하고 있으며 학부모들도 신뢰하며 고마워한다"고 말했다.

이 학교에는 교과성적이 우수한 학생에게 상(賞)을 주는 제도가 없으며, 학급반장도 윤번제로 한다. 학력만으로 학생들을 평가하고, 불필요한 경쟁을 부추겨 학생들을 주눅들게 하는 기존 교육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나름의 처방이다.

◇학부모와 교사가 함께 하는 교육=샛별초등학교는 학부모와 교사가 손발을 맞춰 함께 아이들을 교육하는 학교로도 유명하다. 학부모들이 학교 문턱을 부담없이 드나들기도 하지만 교사들이 먼저 가정방문을 해서 학부모와 만나 아이의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촌지 문제 등을 이유로 교육현장에서 거의 사라진 교사의 가정방문이 이 학교에선 바람직한 교육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지난달 중순 1주일 동안 가정방문을 한 4학년 담임 박신자 교사는 "아이의 가정환경도 파악할 수 있지만 부모님과 격의없는 대화를 통해 아이의 독특한 성격을 이해하고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이 직접 보조교사로 나서 정규수업 시간과 특별활동 시간에 교사를 돕기도 한다. 보조교사 경험이 있는 학부모 이민숙(37·여)씨는 "내 아이를 포함해 학생들의 알찬 공부를 위해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커지는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이 학교 학부모들은 요즘 학교 도서실을 꾸미는 일로 분주하다. 학부모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학부모 도서실 운영모임'의 김은옥(39·여)회장은 "학부모들이 제안해 강당 한쪽에 도서실을 만들기로 하고 방 꾸미는 작업을 하는 중"이라며 "학급별로 흩어진 책을 모아 목록 전산화 작업을 하는 한편 새 책을 더 사들이기 위해 학교발전기금 모금 활동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체험활동=아이들에게 성적이 아닌 삶의 지혜를 가르친다는 게 샛별초등학교의 교육이념 가운데 하나다. '마음껏 즐겁게 뛰놀 수 있는 학교'를 만들려고 하는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다.

이 때문에 이 학교는 다양하고 독특한 학예행사·야외체험 활동을 하고 있다. 어느 학교에나 있는 학예발표회 외에도 내 생각 발표회·동화발표회등 각종 발표회를 수시로 열어 학생들 전원이 참여토록 유도해 졸업 때까지는 잘하든 못하든 누구나 16회 이상 무대에서 발표 기회를 갖는다.

지난 2월 부산에서 이 학교로 4,5학년 자녀 2명을 전학시킨 이모(41·여)씨는 "매달 한번꼴 이상 학교 행사가 있는 것 같다"며 "그러나 행사가 형식적이지 않고 야영·야외학습 등 아이들이 좋아하고 실제 도움이 되는 것들이어서 학교에 대해 갈수록 믿음이 간다"고 말했다.

거창=김남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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