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고객 마인드'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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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3면

미국의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는 그의 저서 『권력 이동』에서 권력이 과거의 무력에서 돈으로, 돈에서 정보로 이동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돈과 정보를 장악한 사람들이 권력을 쥔다는 뜻이다.

재작년 의료대란 때 의료계의 주장 가운데는 집단 이기주의의 발로가 아니라 국민의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었던 합리적 주장도 분명 있었다. 그러나 그중 제대로 관철된 것은 거의 없었다. 토플러의 이론대로라면 돈과 정보 모두에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의사가 사회적 권력에서 소외되고 있는 모순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얼마전 도덕 교과서 사진에서 의사들의 시위를 집단 이기주의의 표본으로 묘사해 물의가 생겼었다. 최근 건강보험관리공단 홈페이지엔 의사를 오랑우탄으로 묘사한 글이 등장하기도 했다. 덩치를 유지하려다보니 하루종일 혼자서 숲속을 헤매며 먹이를 구하는 욕심쟁이 오랑우탄으로 의사를 빗댄 비판이었다.

대한의사협회가 최근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4월에 예정했던 파업을 철회했고 의협 차원에서 첫 공익 캠페인 사업이라 할 비만 캠페인을 전개했다. 최근 끝난 종합학술대회에선 의학 도서 전시회와 자선음악회, 건강 달리기 등 일반인도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선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의협의 변화에 반대하는 비판의 목소리가 의사들 가운데서 제기되고 있다.

집행부에 대해 보다 강력한 대정부 투쟁을 요구하는 강경한 주장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민과 함께 하지 않는 의사에겐 미래가 없다. 국민들은 고가약 처방을 자제함으로써 건강보험 재정을 함께 걱정하고, 미숙하지만 어렵게 태동한 의약분업의 정착을 위해 노력하는 의사들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권력의 본질은 돈도, 정보도 아니다. 진정한 권력은 이미지란 것이 기자의 생각이다.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고 사회에 봉사하는 전문가로서의 의사 상을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의사들이 힘을 쏟아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가 아닌가 싶다. 의사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도 의사들은 고객인 국민에게 더욱 다가가야 할 것이다.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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