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에 나는, 무심코 하늘이 하는 일을 보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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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시가 독자들에게 과연 무슨 소용이 될 수 있는가. 시인 김종해(69·사진)씨의 관심사는 늘 시의 효용과 본질에 대한 문제였다. 그가 지금까지 펴낸 8권의 시집에 실린 ‘시인의 말’들은 대개 그런 질문과 그에 대한 스스로의 답변을 담은, 시론(詩論) 성격인 경우가 많았다. 2001년 시집 『풀』의 시인의 말이 대표적이다. 김씨는 “나는 사랑의 온기가 담겨 있는 따뜻한 시, 영혼의 갈증을 축여주는 생수 같은 시가 좋다”고 분명히 밝힌다.

김씨가 9년 만에 펴낸 아홉 번째 시집 『봄꿈을 꾸며』(문학세계사) 또한 그런 생각과 질문의 결과물이다. 평론가 유종호씨는 해설에서 그런 특징을 ‘견고한 단순성’이라고 표현했다. 시집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역시 ‘봄꿈’이다. 봄꿈, 춘몽(春夢)은 흔히 덧없는 인생을 가리킨다. 하지만 김씨의 시집에서 봄꿈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표제시 ‘봄꿈을 꾸며’에서 시의 화자는 열두 달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달이 이월이라고 말한다. 눈바람이 맵지만 ‘꽃 피는 봄이 코앞에 와 있기 때문’이다.

21일 김씨를 만났다. 그는 대뜸 “지상에서 살아 있는 것 자체가 봄날”이라고 말했다. “삶이 아무리 혹독하다 해도 살아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인생을 긍정하는 시인의 생각은 아무래도 그보다 먼저 간 이들 때문인 듯 하다. 시집에는 임영조·신현정 등 세상을 등진 동료 시인 등, 유독 죽음을 소재로 한 시가 많다.

봄날이 좋은 이유는 ‘꽃은 언제 피는가’에서 엿볼 수 있다.

‘사랑하는 이의 무늬와 꿈이/물방울 속에 갇혀 있다가/이승의 유리문을 밀고 나오는,/그 천기의 순간,/이순의 나이에 비로소/꽃피는 순간을 목도하였다/판독하지 못한 담론과 사람들/틈새에 끼어 있는,/하늘이 조금 열린/새벽 3시와 4시 사이/무심코 하늘이 하는 일을 지켜보았다’.

우주 운행의 비밀, 그 안에서 떠나간 사랑하던 이들도 보이는 날이 봄날이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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