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끝>전원도시 가시마 : "700억엔 경제효과" 6만 주민 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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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조 용했다. 약간은 쓸쓸해 보일 정도로.

도쿄(東京)역에서 고속버스로 한 시간 반을 달렸다. 세계 최대의 스포츠 제전을 치르기에는 너무 작아 보이는 마을, 인구 6만3천명의 가시마(島)로 접어들었다.

'월드컵을 성공시키자'라고 쓴 현수막이 오히려 뜬금없어 보일 정도였다.

도쿄 북쪽 이바라키현의 동쪽 해안에 자리잡은 가시마는 반농반어(半農半漁)의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었다. 1970년대 산업화 바람이 불면서 공장들이 옮겨오기 시작했다. 일본 굴지의 철강회사인 스미토모(住友)금속도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1차산업과 2차산업이 뒤섞이면서 가시마는 정체성을 잃어갔고 젊은이들은 대처로 떠났다.

90년대 초반 프로축구가 시작된다는 얘기가 나왔다. 가시마 사람들은 "축구로 마을을 바꾸자"고 마음을 모았다. 스미토모금속 축구팀이 모체가 된 '가시마 앤틀러스'가 창단됐고,1만5천명을 수용하는 아담한 축구전용구장도 지었다. 은퇴한 브라질의 '하얀 펠레' 지코를 모셔와 앤틀러스 유니폼을 입혔다. 그는 화려한 묘기를 선보이며 팀을 J리그 원년(93년) 전기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적막하던 마을에 아연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앤틀러스는 96년 J리그 챔피언에 등극했고, 이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가시마시가 월드컵을 유치한 원동력이 됐다. 직사각형이던 경기장을 그대로 두고 그 위에 2층 스탠드를 지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요구하는 4만석 이상의 월드컵 스타디움이 만들어졌다.

앤틀러스는 2000,2001년 연속 우승을 포함해 아홉번의 J리그 중 네번이나 우승한 최고 클럽이 됐다. 가시마 시민들은 모두 앤틀러스의 열성 팬이다. 시내 가게들은 붉은색 앤틀러스 페넌트와 각종 포스터로 장식돼 있고 홈경기 때는 스탠드가 붉은색 유니폼으로 물든다. 앤틀러스 서포터 클럽인 '인파이트'의 회원 수는 1만명을 넘는다.

'인파이트'를 만든 가와쓰 도루(32)는 현재 가시마 시의회 최연소 의원이다. 그는 "외지에 나가 가시마 출신이라고 하면 '아, 그 축구로 유명한 가시마에서 왔군요'라는 반응이 나온다. 축구는 우리에게 자부심과 일체감을 심어줬다. 월드컵이 지역경제 활성화와 고용 창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연히 시민들의 월드컵 참여 열기도 뜨겁다. 1천3백명을 목표로 한 자원봉사자 모집에는 1천9백20명이 참가했다. 인구 1백만명을 헤아리는 다른 개최도시의 봉사자 수와 맞먹는다.

쓰레기 줄이기 등 깨끗한 도시 운동을 벌이고 있고, 가시마에서 경기하는 6개국의 기본 회화책을 만들어 배포했다. 가시마 신궁 앞에 대형 화면을 설치하고, 경기 전에는 주민들이 스스로 만든 프로그램으로 축하 쇼를 꾸미기로 했다.

가시마 월드컵 추진실 아라하라 미노루 실장은 "스타디움과 도로 건설 등 7백억엔에 달하는 간접 경제효과를 빼고도 월드컵 기간에 가시마시에 뿌려질 돈만 5억엔이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직접 갖고 와 보여준 '2002~2010 가시마 시 종합계획'의 맨 위에는 '스포츠 선진의 도시-국제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길러내는 도시'라고 적혀 있었다.

가시마시는 3년 전부터 제주도 서귀포시와 자매결연을 하고 초등학생 그림 교류전 등 행사를 해오고 있다. 가시마에 사는 주부 네명이 공동 제작한 노래 '저 무지개를 건너'를 가시마와 서귀포의 초등학생 1천1명씩 모두 2천2명이 6월 8일 두곳에서 동시에 부르는 이벤트도 준비하고 있다.

'무지개 너머에는 그 누가 있을까

어떤 목소리로 말하고 있을까

어떻게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

산을 넘어서 바다를 건너서 지금 들려오는

가벼운 발자국 소리 아 이제 만나리니

저 무지개를 건너서 그대를 맞이해요'.

노랫소리는 벌써 무지개를 건너오고 있었다.

가시마=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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