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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국제 원조' 결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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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수은주가 영하를 밑도는 세밑엔 훈훈한 소식이 주는 감동이 더 크다. 이름 없는 노부부의 거액 기탁 소식도 그런 뉴스다. 거리의 구세군 냄비에 쌓이는 자선도 이때쯤이면 더 수북해진다. 우리가 얼마나 주변에 마음을 썼는가에 대한 연말정산도 이때쯤이면 계산된다. 그런 의미에서 올 한해 한국이 국제사회에 베푼 기부금의 연말 정산을 해 볼 만하다.

국제사회의 기부금은 공적개발원조(ODA)라는 공인된 기준으로 계산된다. 못사는 나라를 위한 정부의 무상원조를 의미하는 단어다. 그런데 좀 부끄럽다. 외교부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지금까지 모두 127억달러의 ODA를 받았다. 우리가 주는 ODA는 1963년 체면치레로 시작돼 91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출범하면서 체계화됐다. 2003년에는 3억6600만달러로 전년에 비해 31% 늘었고 91년(5700만달러)보다 650%나 늘었다.

그런데 괄목상대하게 늘어났다지만 구조를 따져보면 답답해진다. 국민 1인당 소득에서 차지하는 ODA 비율은 0.06%. 우리가 가입돼 있음을 자랑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0.25%의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더 화끈거리게 된다. 우리와 경제 규모가 비슷한 네덜란드는 0.8%다. 스페인도 0.23%, 호주는 0.25%다. '잘사는 나라들이니까'라고 삐딱하게 볼 것도 아니다. 우리와 1인당 국민소득이 비슷한 그리스(0.21%).포르투갈(0.22%)에 비해서도 한참 처진다.

우리의 ODA는 공짜도 아니다. 그중 40%는 꿔주는 것이나 다름없는 차관 형식이다. OECD 회원국 가운데 호주. 아일랜드.룩셈부르크.뉴질랜드 같은 나라는 100% 그냥 준다. 그나마 대가 없이 주는 60% 원조도 건강한 게 아니다. 2002년까지 그 비율은 32%였는데 2003년부터 이라크 재건 지원이 포함되면서 비율이 껑충 뛴 것이다. 요컨대 한국의 ODA 성적표는 '제법 살면서도 인색한 나라'임을 보여준다.

한국의 국제적 지위가 높아지고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이젠 '국제 평화 지킴이'라 할 수 있는 유엔 사무총장 진출까지 노리는 위치까지 왔다. 그렇다면 '자린고비 한국'의 이미지도 개선해야 한다. 안 그러면 국제사회가 '한국은 감투만 밝히는 나라'라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른다.

정치부 안성규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