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남자여, 부엌을 점령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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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개를 키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중대한 사실 하나가 있다. 별로 사랑을 베풀지 않아도 먹이 주는 주인과 예뻐만 해주는 주인 사이에 분명하고도 명백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개의 입장에서 보면 먹이 주는 주인은 자신의 생살여탈권을 쥔 경우다. 주인의 작은 야단에도 복종의 표시로 발랑 몸을 뒤집지만 예뻐만 해주는 주인은 마음에 안 들면 이따금 물기도 한다. 최근 우리의 가정사에서도 이 '먹이'의 주권자가 분명 보이지 않는 권력을 쥐고 세상을 좌지우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다소 엉뚱한 발상인지 모르지만 내 생각으론 요즈음 아내가 해 주는 밥 얻어먹으며 무위도식하는 나이든 남자들의 문제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조기 은퇴라는 사회적 시류와 고령화 사회로의 급속한 변화가 한때 부부관계에서 서슬 퍼렇던 남자들의 권력을 추락시키는 데 일조했다. 생산의 주권이 곧 권력인 점을 감안해 보면 일자리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권력의 상실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가부장의 권위가 하루아침에 땅에 떨어지고 아내들의 권세 앞에 쩔쩔 매는 형국으로 부부관계가 역전되는 시기도 이때쯤이다. 중요한 것은 아직도 우리의 남자들이 갑작스럽게 높아진 아내의 위세의 배경을 잘 이해하지 못한 채 권력의 역전현상 앞에 당황만 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날로 심해지는 아이들의 무관심과 아내들의 구박(?)에 살기 힘든 남자들이 모여 이구동성 '여자들이 문제'라며 아우성이다. 팔순을 훌쩍 넘기며 어머니와 함께 건강하게 해로하시는 나의 노부(老父)만 보더라도 화려했던 봄날은 간 지 오래다. 부부싸움을 해도 자식들은 으레 어머니 편이고 부엌을 장악한 어머니가 파업을 선언하면 외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다 이내 굶기 일쑤다. 차라리 항복하며 온순하게 몸을 보존하는 쪽이 낫다는 것이 노부의 생각인데 결론은 '아무튼 말세'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모르긴 해도 오늘날 나이 든 남자들의 수난은 남자들 스스로 자초했다고 보는 쪽이 더 맞다. 우선 나이 든 남자들은 두 가지의 중대한 문제를 그냥 지나치고 살았다. 첫째는 가정에서 권력이 나오는 중요한 거점인 '부엌'을 너무 하찮게 여겨왔다는 점이다. 남편들이 일터로 간 사이 '여편네'인 아내들은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아이들과 남편의 입맛을 자신들의 뜻대로 길들여 왔다.

엄마의 입맛에 길들여진 아이들이 또 하나의 세상으로 자라나면서 아내의 권력이 배가된다는 사실을 남편들은 알았어야 했다. 또 먹이가 만들어지는 부엌의 주권을 쥔 아내의 파업에서 오는 고통을 미리부터 대비해 두지 못한 남자들의 준비부족에서 온 결과가 아닐까. 나의 노부가 노모의 폭압(?) 앞에 꼼짝 못하고 항복해버리는 사연도 사실은 요리를 통해 생살여탈권을 휘두르는 부엌의 권력 앞에 무릎 꿇은 결과다.

두번째는 또 하나의 권력을 키우는 요람을 우습게 봤다는 점이다. 육아 같은 하찮은 일은 아내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남편들은 미래의 권력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당한다. 정년퇴직 후 급격히 추락한 남자들의 구겨진 위상에 엄마의 요람에서만 키워진 아이들이 한몫 하고 있다는 중대한 사실을 알았어야 했다.

바야흐로 남자들의 수난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그 수난의 이유와 배경을 알고 미리 준비하면 노후를 드센 여자들로부터 안전하게 지켜갈 방법이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이미 나이 든 남자들은 요람을 흔들 시기를 놓쳤지만 이제부터라도 '요리'를 배워 젊은 날 어쩔 수 없이 여자들에게 빼앗겼던 부엌을 탈환할 기회를 엿봐야 한다. 그러나 아내의 권력을 더욱 강화(?)해주는 미련스러운 설거지는 안 된다. 오직 '요리'를 해야만 한다.

홍사종 경기 문화의전당 사장.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