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찾은 부시 흑인만 껴안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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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4·29 폭동 10주년을 맞아 지난달 29일 로스앤젤레스(LA)를 방문했다.

그는 폭동의 진앙지인 사우스센트럴 지역을 찾아 주민들의 재건 노력과 인종화합을 칭송하고 격려하는 연설을 했다. "한인 커뮤니티가 폭동으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은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뒤늦게라도 재기에 힘이 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다짐도 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실제 행적은 이같은 다짐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정작 폭동의 최대 피해자였던 한인들은 외면한 채 가해자격인 흑인 커뮤니티 인사들을 다독거리기에 급급했다.

부시의 사우스 센트럴 연설행사에는 LA의 각계인사 3백여명이 초청됐다. 그러나 한인 초청자는 하기환 LA 한인회장 등 단 세명에 불과했다. 부시는 한인타운에 들르지도 않았다. 교포들로서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부시의 LA방문에 앞서 하기환 회장과 찰스 김 한미연합회 사무국장은 부시의 부친인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10년 전 폭동 직후 한인타운을 방문했을 때의 사진까지 동봉해 "한인타운에 와서 피해자들을 격려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부시는 대신 흑인·히스패닉계가 밀집한 지역을 찾아 유력인사들과 원탁회의를 했고, 연방정부가 지역개발을 지원하겠다는 약속도 내놓았다.

이 때문에 LA교포들 사이에서는 "우리는 마이너리티(소수그룹) 중의 마이너리티"라는 자조가 흘러나왔다. 일부에선 "부시는 어차피 정치인이다. 흑인사회의 다수 표를 의식한 정치적 제스처로 치부하고 넘어가자"며 씁쓸해 하는 반응도 나왔다. LA의 흑인·히스패닉 거주지역은 공화당이 취약한 곳이다.

많은 교포들은 "서러움을 면하려면 힘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한인사회가 먼저 막강한 역량을 갖춘 뒤 워싱턴 정계를 향해 "가려운 내 등을 먼저 긁어주면 다음에 네 등을 긁어 줄게(Scratch my back first,then I'm gonna scratch yours)"라고 당당하게 요구할 정도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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