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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연구 돋보기 역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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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문화연구의 중추 역할을 해온 『문화과학』(문화과학사刊)이 창간 10주년을 맞았다. 문화적 코드를 이용해 현실에 비판적으로 개입하기 위해 동인지 형태로 출발한 이 이론지는 창간 10주년을 앞두고 30호 편집 작업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부정기적으로 출간하던 이 잡지는 문화연구가 활발해지면서 계간지로 전환했고, 이제는 중요한 사회적 기호를 생산·소비하는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10년전 강내희(중앙대·영문학)·박거용(상명대·영문학)·이득재(대구가톨릭대·러시아문학)·심광현(한국예술종합학교·미학)·반성완(한양대·독문학)·도정일(경희대·영문학)·원용진(서강대·신문방송학)·홍성태(상지대·사회학)교수 등이 동인으로 뭉치게 된 것은 사회의 변혁 열기가 식어가면서 새로운 모색의 필요성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체제론적 변혁 전망이 실패한 것은 바로 '즐거운 혁명'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며, 따라서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인간 욕망의 재구조화, 문화론의 재구성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이른다.

자연히 이들이 도달한 '문화'개념 자체는 전통적 구분에 따른 문화가 아니었다. 정치·경제·사회를 해석하는 중심 코드로 자리잡음으로써 문화는 오히려 이들을 포괄하는 전체가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전통적 정치경제학 비판 대신에 문화소비에 대한 비판을 시도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동인지의 제목에서 '문화'와 '과학'이 결합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들은 처음 언어·욕망·육체·공간 등과 같은 문화연구의 기본적 개념들로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적 틀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7호부터 대중정치·과학기술·뉴미디어·지식생산 등을 통해 현실에의 이론적 개입을 시도한다.

아울러 14호 이후부터 문화정치·문화사회·문화공학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낸다. 욕망이 국가 이데올로기 속에서 생산되고 소비되는 구조를 비판적으로 분석할 때 이미 그것은 단순히 욕망의 표현으로서의 문화가 아니라 욕망의 구조로서의 정치학·사회학·공학이 되기 때문이다.

이들의 집단적 활동은 한국 문화연구의 기폭제가 됐다. 이 이론지의 창간 이후 문화담론이 확산된 것은 물론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입과 함께 문화론이 번성했다. 영화·대중문화·가요·컴퓨터·게임 등 문화산업과 인터넷의 확산은 그것의 구조를 분석하고 비평하는 전문가를 요구하게 되었다. 여성학도 문화행위의 주체를 연구한다는 점에서, 나아가 지배문화를 비판한다는 점에서 문화연구와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문화연구는 학제간의 벽이 두터운 대학에서도 하나의 독자적 분야로 자리잡았다. 연세대가 조한혜정(사회학)교수를 중심으로 대학원에 문화연구 협동과정을 설립한 것을 비롯, 각 대학의 학부 커리큘럼에서도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강좌가 됐다.

문화연구의 이같은 번성에는 냉전 이후 미국의 전략적 시각에서 이뤄진 지역연구가 행위자들의 다양성과 주체성을 핵심으로 하는 문화연구로 전환하고 있는 서구 학계의 분위기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매주 1회씩, 지금까지 약 5백여회 세미나를 거쳐 지속적으로 새로운 문제의식을 가다듬어 가면서 차세대 문화연구자를 생산해온 이들은 4일 오전 10시부터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 14층 대회의실에서 '이데올로기와 욕망-즐거운 혁명이다'를 주제로 창립 1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갖는다. 쾌락·욕망·이데올로기·혁명·국가 등 다른 차원의 개념들을 엮어 새로운 분석을 시도할 예정이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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