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개인정보 줄줄이 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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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일본 구마모토(熊本)현의 60대 여성은 지난 7일 "내가 약을 잘못 처리해 환자가 죽었다"며 울먹이는 딸의 전화를 받았다. 딸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여성은 간호원인 딸이 떠올랐다. 곧 바로 "딸이 의료사고를 일으켰다"(원장), "화해금 1500만엔(약 1억5000만원).변호사 비용 300여만엔이 필요하다. 원장이 1200만엔을 내니 나머지는 당신이 내라"(변호사)는 전화를 받았다. 급한 마음에 변호사가 말한 은행계좌로 600여만엔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 후 사기당한 것을 알았다. 일본에선 이같이 전화 등을 이용한 '은행 송금 사기'가 크게 늘고 있다. 올해 1~10월에만 2만830건(미수 포함)의 은행 송금 사기가 발생했다. 피해액은 222억엔에 이른다. 송금 사기가 급증하는 것은 여러 기관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되고 있지만, 정부의 관리가 허술하기 때문이라고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최근 보도했다. 사기꾼들이 개인정보를 악용, 가족 외에는 알기 힘든 정보로 노인들을 속이는 것이다.

◆ 개인정보 유출=인터넷 서비스 '야후'를 운영하고 있는 소프트방크BB는 지난 16일 "회원정보 9213명의 정보가 유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올 7월 이후 컴퓨터 도난.분실 등으로 보험업계에서 유출된 개인정보만 1만8000건 이상"이라고 지난 12일 보도했다. 대학 졸업생, 각종 모임 회원, 대기업의 고객 설문 조사지(신상 정보에 대한 답변이 포함돼 있다) 등도 나돌고 있다.

◆ 개인정보 판매=니혼게이자이는 "도쿄(東京)도 내 명부 전문점들은 전국 대학 졸업생 명부부터 각 마을(町) 내 모임 명부까지 취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터넷에는 '명부 재고 있다'는 선전 문구와 함께 이런저런 명부가 올라 있다. 가장 비싼 것은 '특수 명부'로 불리는 통신판매 구입자.유료사이트 등록자 명부다. 이 신문은 "통신판매(DM)로 고객을 확대하려는 기업이 많이 구매한다"고 밝혔다. 가격은 정보 대상자 한명에 20~80엔이다. 이런 정보들이 범죄에 악용되고 있다.

◆ 정보 관리 허점=니혼게이자이는 "범죄에 이용될 것이란 걸 알고 정보를 팔면 처벌할 수 있지만 단순 판매는 문제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경제산업성 관계자는 "명부 판매가 악질인가 아닌가를 구분하는 것이 어려워 금지하는 게 어렵다"고 밝혔다. 내년 4월이 돼야 '개인정보 보호법'이 전면 시행될 예정이다. 내용은 고객 5000명 이상의 명부를 갖고 있는 민간기업도(이미 시행 중인 행정기관뿐 아니라) 고객 정보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위반하면 담당자는 6개월 이하 징역이나 30만엔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오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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