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RI Report] 물가 불안보다 경기 불안이‘현실’…금리인상 카드 신중히 다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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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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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경기, 하반기엔 가라앉는다=지난해 말부터 국내 경기 회복을 자신할 수 있는 징표가 많았다. 올 1분기 8.1% 성장은 누가 보더라도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성장률 그 자체보다 지금의 경기와 일자리의 회복을 좋게 보는 이유는 그것이 경기 부양책보다 민간에 의해 이룩된 것이고 따라서 지속성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실업률로 보나 가동률로 봐도 회복세가 정착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지금의 회복세가 그대로 유지되기는 힘들게 되어 있다. 진부하지만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올해의 높은 성장 그 상당 부분이 지난해의 무(無)성장에 따른 기저효과로 설명된다는 점이다. 또 모두가 하반기에는 상반기만큼 성장세가 강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나랏돈도 상반기에 몰아 써버려 하반기에는 경기 버팀목 하기 힘들게 되어 있다. 투자와 민간소비가 주춤하는 기미가 엿보이며 경기선행지수도 수개월째 고개를 숙이고 있다. 지금의 경기 회복이 그렇게 자신 있다면 왜 여전히 일자리 창출을 국가 과제로 삼고 있을까 싶다.

◆선진국 경기 불안이 계속된다=수출 신장률이 몇 분기째 두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다. 그만큼 글로벌 경제의 회복세가 강했고 또 우리 환율이 높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우리뿐 아니라 아시아 대부분의 수출 급등세는 지난해 같은 때의 국제무역 폭락에 따른 기저효과가 큰 몫을 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글로벌 경제, 특히 선진국의 회복이 이어진다고 해도 앞으로 우리 수출이 지난 몇 개월의 신장세를 보일 수는 없다는 판단이다.

게다가 선진국 경기는 유로 지역의 재정위기, 더 이상 경기 부양책을 동원할 수 없는 재정 상황과 동시다발적인 재정건전화 등으로 더블딥(이중침체)이 도래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유로화가 주저앉아 훼손된 대유럽 수출 기반이 언제 회복될지, 위안화 상승으로 중국의 수출이 줄어들 경우 중국에 대한 우리의 중간재 수출이 흔들리지 않을지, 다시 벌어지는 미·중국 간의 무역 불균형이 세계적 보호주의의 확산으로 번질지, 곳곳에 불안이 널려 있다. 수출 기반이 흔들려도 우리만의 독자적인 성장이 가능할까 의심스럽다.

◆물가상승, 해외 요인 때문이다=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2개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을 보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만하다. 게다가 내수 회복세가 강하고 공공요금을 인상해야 할 요인이 쌓이고 있으며 임금도 들먹이고 있다. 국제기구들도 글로벌 위기 통에 벌어졌던 국내총생산(GDP) 산출갭(수요가 국내 산출 능력에 못 미치는 것)이 해소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온 올해 물가상승 예측치들은 전부 3% 안팎이다. 내년이라면 모를까 올해 물가상승률이 3.5% 넘을 것이라는 전망은 없다. 근원 인플레는 아직도 2% 미만이다. 그 수준이 우리가 금리를 올려 경기를 식힐 수준인가?

또 지금의 물가상승을 보면 대부분이 해외 물가상승으로 설명된다. 원유 및 원자재 가격 상승, 중국 제품 값 상승이 우리의 물가상승을 부추겼고 우리의 높은 환율 또한 수입물가 상승에 한몫을 하고 있다. 지금의 물가상승이 수요(demand pull) 인플레라기보다는 비용(cost push) 인플레인 것이다. 그런데 왜 금리를 올려 내수를 죽이려고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국내외 금융 불안 여전하다=많이 풀린 돈이 위기 전 속도로 다시 빨리 돌기 시작했다. 게다가 금리가 낮아서인지 가계 부채가 늘어나고 있어 걱정이 쌓이고 있다.

저금리와 과잉 유동성에 따른 폐해는 늘 걱정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이 그 걱정을 심각하게 해야 할 때로 보이지는 않는다. 우선 지금이 자산 버블을 걱정해야 할 때 같지는 않다. 오히려 일부 지역이기는 하지만 부동산 거래 위축과 집값 하락이 심상치 않다. 정부가 주택시장 거래 정상화에 부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적어도 올해 안에 부동산으로 돈이 몰려 집값이 급등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또 금리를 인상하기 전에 고려해야 할 점은 금리를 인상하면 안 그래도 불안한 집값이 급락세로 돌아설 수 있고(본지 4월 27일 37면), 건설·조선·제2금융권 등 잠재적 부실과 중소기업 자금난이 상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라 밖을 보면 금융 불안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안정되었다면 왜 금값이 사상 최고치 경신을 계속하고 있겠나. 시장은 여전히 글로벌 금융 불안이 심각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유로 지역의 불안은 사라지지 않고 있고, 그 불안에 따라 외화자금이 밀물과 썰물을 반복하면서 환율이 춤을 춘다. 이럴 때에 금리를 올리면 통제하기 힘들 정도의 핫머니 유입과 환율 급락이 불 보듯 하다.

◆금리 인상 서두를 때 아니다=보통 때라면 금리 조정은 선제적일수록 좋다. 그러나 지금은 보통 때가 아니다. 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지고 있기는 하나 우리 경기나 글로벌 금융 불안의 앞날은 아직도 불투명하다. 섣불리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낼 때는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설사 물가상승 압력에 대해 대응하더라도, 금리 인상 한 정책에 모든 부담을 지울 건 아니다. 예산 집행 속도 조절과 재정건전화, 환율 하락 유도, 구조조정 촉진 등 여타 정책과 기조를 같이하면서 정책조합(policy package)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김정수 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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