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권위주의 시절의 ‘민간인 사찰’ 되살아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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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관가(官街)에서 ‘암행감사’나 ‘저승사자’로 불린다. 이들의 감찰 대상은 공직자의 직급과 직역(職域)에 제한이 없다. 장·차관은 물론, 검찰이나 국세청 관리도 이들 앞에선 시쳇말로 설설 긴다고 한다. 이런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기관이 이젠 공직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까지 불법으로 조사하고, 유형·무형의 압력까지 넣는다고 한다.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과거 권위주의 시대 ‘민간인 사찰’이라도 부활했단 말인가.

황당한 일을 당한 민간인은 단순히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을 비방하는 동영상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것이 화근이 됐다. 내용이래야 의료 민영화, 4대 강 사업 등과 관련한 것으로 인터넷에서 내려받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그가 운영하는 회사의 회계 자료를 불법으로 조사하고, 경찰 수사를 요청하는 공문까지 보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그의 회사와 관련된 은행에 찾아가 거래를 끊으라고 압력까지 넣었다는 것이다. 견디다 못한 그는 대표이사직과 지분을 내놓았다고 한다. 마치 3공, 5공 시절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스스로 절제하지 못하는 권력은 부패하게 돼 있다. 이는 역사가 증명한다. 권위주의 시절 정보기관과 사찰기관이 그랬다. 그런 점에서 감찰기관은 주어진 권력의 오·남용을 각별히 경계해야 한다. 더욱이 이들 기관의 존립 이유는 국민에 대한 ‘공적 서비스’의 질을 한층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오히려 국민을 통제하고 군림하려는 행태를 보인 것이다. 이러니 과거 청와대의 특명수사를 담당하던 경찰청 ‘사직동팀’ 같다는 비아냥을 듣는 것이다. 이런 행태야말로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부채질한다. 경찰의 고문(拷問)에 이어 총리실의 민간인 조사까지 터져 나오니 당장 ‘과거 회귀식 정권’이란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렸다는 오명을 듣고 싶지 않다면 이번 일을 어물쩍 넘겨서는 안 된다. 국무총리실은 경위를 철저히 조사하고, 관계자의 권한 남용이나 불법 행태에 대해서는 엄중 문책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