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 제2부 薔薇戰爭 제3장 虎相搏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다음날 오후.

인용사를 나서는 한 떼의 무리가 있었다. 11월의 늦은 가을이라 뉘엿뉘엿 해가 지는 듯 하더니 어둑어둑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하였다.

지체가 높은 귀족의 행차였는지 두 마리의 말을 앞뒤에 한 마리씩 두어 말안장의 양편에 채의 끝을 걸어 멍에한 수레를 앞세우고 좌우에는 권마성(勸馬聲)을 내는 하졸들이 이따금 위세를 더하기 위해서 가늘고 길게 빼어 부르고 있었다.

"쉬잇, 물렀거라."

인용사는 남산의 북쪽으로 뻗어내린 왕정곡(王井谷) 입구 남천(南川)의 남쪽에 있었으므로 땅거미가 내리자 산 그림자가 드리워져 이내 어두워졌다.

원래 인용사는 문무대왕의 친동생 김인문이 당나라와 화친을 도모하기 위해서 사신으로 갔다가 옥에 갇혔을 때 신라사람들이 그의 안녕을 빌기 위해서 이 절을 짓고 관음보살을 모신 관음도량으로 하였으나, 김인문이 바다에서 죽자 아미타불을 모시고 그의 명복을 빌던 도량이었다.

따라서 이 절은 신라의 왕이나 진골귀족들이 선왕이나 선조들의 명복을 비는 원찰로 이 절에는 당대의 왕사였던 두광(頭光)스님이 주석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수레의 형태를 봐서도 한마디로 진골귀족의 행차임이 분명하였다. 두 필의 말이 끄는 수레를 선두로 휘장을 치지 않은 수레가 뒤따르고 있었으며, 대여섯 명의 사복들이 수레를 앞뒤에서 에워싼 후 걸어가고 있었다. 다행히 사복들은 거동할 때 따르는 하인들로 무장은 하지 않고 있었다.

나라에서는 진골의 귀족들이라 할지라도 금은과 옥으로 수레의 장식을 하지 못하도록 엄명을 내리고 있었으나 찬란한 금은보석으로 장식하고 있었으므로 마침 뉘엿뉘엿 지는 가을 햇빛을 반사하여 눈부시게 번득이고 있었다. 또한 수레의 손잡이는 바다거북의 등껍질로 만든 대모갑(玳瑁甲)으로 치장하고 있었고, 말고삐 마저 반짝이는 비단 끈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분명히 흥덕대왕으로부터 어명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수레는 한마디로 호화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말의 고리도 금과 은으로 만들어졌고, 심지어 말이 걸을 때 흔들리는 장식물의 일종인 보요(步搖)도 금으로 장식되어 있을 정도였다.

한눈에 보아도 수레 속에 탄 사람은 대왕마마 다음으로 지체가 높은 사람임에 분명하였던 것이다.

"저것이다."

울창한 송림의 소나무 위에 숨어있던 사내 하나가 가만히 손을 들어 맞은 편 나무 가지 위에 올라서 있는 검은 사내를 쳐다보면서 가만히 언덕길을 올라오는 수레행렬을 가리키며 중얼거려 말하였다.

사내들은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있었고, 머리에는 복두라고 불리는 검은 수건을 두르고 있었다. 유사시에는 복두를 풀어 얼굴을 가리면 그대로 복면이 될 수 있는 검은 헝겊이었다. 그러나 손가락을 들어 앞선 수레를 가리킨 사내는 얼굴에 방상시의 탈을 쓰고 있었다.

원래 방상시의 탈은 장례행렬에서 맨 앞에 수레를 끌고 가며 잡귀를 쫓고, 묘소에 이르러서는 광중(壙中)의 악귀를 쫓아 한번 쓴 탈은 묘광(墓壙)속에 묻거나 태워 버리는 것이 상례인데, 따라서 사내가 쓴 탈은 미구에 있을 처참한 장례에 대한 전조를 미리 암시하고 있는 데드마스크처럼 보이고 있었다.

"온다."

탈을 쓴 사내가 손을 들어 자신의 입을 막았다. 목표는 오직 하나.

선두에 오고 있는 수레 속에 타고있는 사람의 목숨을 끊어버리는 일이다. 수레 속에 앉아있는 사람의 정체는 알 필요가 없다. 인간병기에 불과한 하수인은 다만 시키는 사람의 명령만 따를 뿐. 공격의 방법 또한 오직 하나뿐, 그것은 재빨리 공격하고 재빨리 끝을 맺어버리는 속전속결뿐인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