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5> 제101화 우리 서로 섬기며 살자 ⑭ 백담사 全전대통령 방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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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1988년 전두환 대통령이 퇴임한 후 나는 연희동 사저를 몇 번 찾아 기도를 해주었다. 그해 11월 말께 여론이 나빠지자 전씨 부부는 성명을 발표하고 백담사로 들어갔다.

한달 뒤 나는 백담사로 향했다. 새벽 4시30분에 출발해 아침 8시쯤 백담사 아래에 도착하니 경비를 서고 있던 사람들이 나를 가로막았다.

"김장환 목사입니다. 기도해주러 왔습니다."

그들이 여기저기 전화를 걸더니 백담사로 올라가게 했다. 8㎞를 걸어 백담사에 도착하자 사진기자들이 마구 셔터를 눌렀다. 혹여 전두환·이순자 부부의 모습을 담을 수 있을까 해서 기자들이 상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자들이 일제히 몰려와 어떻게 왔느냐고 묻다가 내가 성경을 들어보이자 관심을 뚝 놓았다. 외부인으로 처음 방문한 나를 전씨 부부는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들은 백담사 요사채에 기거하고 있었다. 방안엔 별다른 장식이나 가구가 없어 절 방 그대로였다. 까맣게 탄 아랫목에 물을 담은 대야가 놓여 있었다. 문틈으로 바람이 많이 들어오는지 문이며 창은 비닐로 다 막혀 있었다.

옆방에 가보니 벽돌에다 판자를 얹은 초라한 '화장대' 위에 화장품 몇 가지가 놓여 있었다. 의자도 침대도 없이 생활하려면 허리가 많이 아프겠다 싶었다.

이순자씨는 밤에 측간(변소)에 갈 때면 남편이 플래시를 들고 따라나선다며 가급적 안가려고 저녁에는 되도록 물을 마시지 않는다고 말했다. 목욕은 수건에 물을 적셔 닦는 것으로 대신한다고 말했다. 내가 안쓰런 표정을 지어서인지 전씨는 육군 소위 시절에 비교하면 호화판이라고 농담을 했다.

"내가 장관 시켜 주고 별 달아 준 사람은 하나도 안 찾아오는데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이 편지도 보내고 쌀도 보내고 배추도 보내 줍니다. 여기 와서 인생을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전씨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권력의 무상함을 절실히 느꼈다.

전씨는 백담사로 향할 때 기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수원으로 돌아왔다는 얘기를 했다.

"1980년에 아들 재국이와 함께 식사를 했던 기억이 나서 '이 근처 어딘가 김목사 집이 있었는데…'라고 생각했어요."

전씨는 내가 살았던 집 세 곳을 모두 방문했었다. 인계동 집을 팔고 새 집을 짓는 동안 잠시 머물렀던 교회 운전기사 사택에도 왔었다. 열평 남짓한 좁은 집이었는데 부엌과 방 하나밖에 없어 방안에 있던 침대를 밖에 내놓고 전씨 부부와 함께 식사를 했던 기억이 새로왔다.

백담사에서 만났을 때 전씨는 아무 말 하지 않았으나 이씨는 인사를 하고 간 근처의 군인들이 힘들어한다는 소리를 들었다는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또 노태우 대통령의 측근이 단 한명도 백담사를 방문하지 않은 것과 노대통령의 딸 소영씨가 결혼할 때 청첩장을 보내지 않은 일을 서운해했다.

나는 어김없이 절에서도 두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 성경 말씀을 읽고 기도를 드렸다. 다만 찬송가는 부르지 않았다.

정오쯤에 가야겠다며 일어서는 나에게 전씨는 "절 밥 한번 먹고 가라"고 권해 스님이 지은 밥을 먹고 백담사를 떠났다.

그때부터 백담사에 기거하는 동안 한달에 한두번씩 아내가 만든 케이크와 과자를 들고 함께 전씨 부부를 찾았다.

나는 백담사에 다녀와서 노태우 대통령을 만났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왜 전씨에게 인사하러 간 사단장을 기합 줍니까. 매주일 인사 가라고 해서 서로 교류를 하세요. 그리고 그 사람들 나중에 영전시켜 주세요"라고 얘기했다.

전씨와 가까운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하라는 당부도 했다. 그리고 노대통령 측근이 한 사람도 다녀가지 않은 것도 그쪽에서 볼 때는 섭섭한 일이라고 얘기하고 전기도 달고 쌀도 보내라고 했다.

그날 "그런 거 한다고 사람들이 욕 안 합니다"라고 말했는데 그래서인지 그 다음날 김윤환 민정당 원내총무가 백담사로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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