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시장 혼탁 여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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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재건축규제 강화방침을 잇따라 내놓는데도 재건축 시장은 점점 혼탁해지고 있다.

재건축 추진위원회는 안전진단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시공사를 서둘러 정하는가 하면,업체들은 조합이 현실성없는 사업조건을 제시하는데도 엄청난 홍보비를 뿌리며 출혈 수주경쟁을 하고 있다.

하나컨설팅 백준 사장은 "시공사 선정 때 제시되는 계획이 사업승인 때 바뀌는 사례가 많은 만큼 그대로 믿고 투자했다가는 손해볼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전 진단도 안받고 시공사 선정=재건축 여부를 결정하는 안전진단결과가 나오기 전에 시공사부터 뽑는 곳이 수두룩하다. 사업승인을 받은 뒤 시공사를 정해야 하는 제도가 이르면 연말부터 시행되기 때문이다.

서울 강동구 고덕지구 9개 단지 가운데 시공사를 선정한 주공 1,2,4단지와 시영 등 네곳 모두 안전진단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고덕시영은 시공사 선정 보름전인 지난달 15일 안전진단을 신청했으며, 주공2단지는 지난달 14일 안전진단을 신청한 이틀 뒤 시공사를 정했으나 상가동의율(3분의 2 이상)을 확보하지 못해 최근 신청을 철회했다.

지난해 말 시공사를 뽑은 의왕 대우사원아파트는 올 1월에야 안전진단을 신청했다. 하지만 아파트 값은 21평형이 2억9천만원선으로 재건축이 추진되기 시작한 6개월 전보다 1억원 가까이 올랐다. 지난해 하반기 시공사를 정한 광명 하안·철산주공 아파트 단지 가운데 조합설립인가를 신청한 단지는 한 곳도 없다.

주공 재건축사업단 관계자는 "시공사 선정만큼 아파트 값을 띄우기 좋은 재료가 없어 추진위원회는 조합원의 마음과 사업 주도권을 잡기 위해 시공사를 빨리 정하려 한다"고 말했다.

◇현실성없는 사업계획 여전=고덕지구의 경우 서울시가 지난해 말부터 용적률 2백% 미만으로 사업을 추진토록 도시계획위원회 자문결과를 제시했지만 대부분의 단지가 용적률 2백45~2백50%를 조건으로 시공사를 정했다. 강동구청 관계자는 "서울시와 조합원의 희망 용적률 차이가 워낙 커 6월 말까지 지구단위계획을 확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의왕시 내손동 대우사원아파트도 용적률을 최대 2백79%로 추진하고 있지만 사업승인 때 이를 받아내기는 사실상 어려울 전망이다.

의왕시가 지난해 9월 도시계획 재정비 변경 신청을 경기도에 내면서 이 아파트가 포함된 포일지구를 3종 주거지역(최대 용적률 3백%)으로 올렸지만 도시계획심의위원회에서 2종(용적률 2백50%미만)으로 낮추도록 의결했기 때문이다.

배경동 서울시 주택국장은 "도시·주거환경정비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지침이나 예규 등으로 시공사 선정시기를 제한할 수 있는 방안을 건교부와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건설업체 관계자는 "재건축 추진위원회가 용적률이나 단지설계안을 만들어 사업 참여조건으로 제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주택업체가 이를 거부하면 입찰에 참여조차 못한다"고 해명했다.

강황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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