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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개혁 10년 프로그램 짜자 ① 육해공 3군 균형 체제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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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합동성 강화의 대의에는 찬성하지만 한국군이 자칫 ‘물오리’가 되자는 얘기처럼 느껴진다. ‘물오리’는 물에서 헤엄도 치고 땅 위에서 걸으며 공중으로 날기도 한다. 얼핏 보면 이런 군이 바람직하다는 논리로 합동성이 얘기돼서는 곤란하다. 물에서는 상어처럼, 땅에서는 호랑이처럼, 공중에서는 독수리처럼 싸우는 군이어야 한다. 각 군의 전문성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합동성이라는 명분으로 다 섞어놔서 결국 물오리가 되자는 얘기는 아닌지 다시 점검해야 한다.”

김 총장의 이 발언은 전문성을 갖춘 각 군 균형 발전이 중요함에도 실제로는 특정 군 위주로 돌아가는 합동성 강화 추진에 대한 불만이 담겨 있었다. 토론회가 끝난 후 군 수뇌부와 회식을 마친 이 합참의장이 기차로 상경하던 바로 그 시각 백령도 인근에서 천안함은 두 동강 난 채 침몰하고 말았다.

2006년 6월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장성 대상 연례회의인 무궁화회의에 참석한 육·해·공 군 장성과 장군 진급할 대령들이 벗어놓은 모자. 29개의 모자는 해군 3개, 공군 3개, 해병대 2개이며 나머지는 모두 육군이다. [중앙포토]

◆합동성 토론회 날 무너진 합동성=사건 직후 해군 지휘 계통을 거쳐 합참의장, 국방부 장관까지 보고되는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49분에서 1시간 가까이 군 최고지휘부는 공백 상태였다. 군 경계태세가 발령됐지만 공군 전투기의 출격도 1시간20분이나 지체됐다. 구조작전도 우왕좌왕했다. 이상의 합참의장이 지난달 14일 이례적으로 자군 중심주의를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은 이와 맞물려 있다는 지적이다. 이 의장은 합참 간부 600여 명을 모아놓고 “(합참 간부들이) 한쪽 발은 합참에, 또 다른 한쪽 발은 (육·해·공군 본부가 있는) 계룡대에 올려놓고 기회를 엿봐선 안 된다”고 간부들을 질타했다. 군령권자인 합참의장보다 군정(인사)권자인 각 군 참모총장의 눈치를 보면서 자군 이기주의에 빠져 있는 내부 문화를 경고한 것이다.

◆자군 중심주의에 빠진 군=“육군은 육군 인쇄창에서 간행물을 발행해야 하고, 해군은 해군 휴양시설에서 쉬어야 하며, 공군은 공군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려 한다.”

윤우주 전 국방부 기본정책과장은 자군 중심주의에 빠진 군의 현 실태를 이렇게 비유했다.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각 군 본부의 기능과 인력을 축소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방 전문연구소인 ‘안보정책네트웍스’ 홍성민 소장도 “‘우리나라에는 육·해·공군만 있지 국군은 없다’는 자조적인 얘기까지 들린다”며 “육군은 덩치에 비해 리더십이 부족하고 해·공군도 폐쇄적인 자군 중심주의로 인해 합동성 강화를 위한 자체 노력이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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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에 편중돼 3군 균형 발전 실종=3군이 합동성을 발휘하기 위해서 전제돼야 할 것은 각 군의 균형 발전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 군은 육방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육군 위주로 돌아간다. 국방부 내 군 출신 국장 14명은 대부분 육군 출신이다. 합참의장 역시 창군 이후 임명된 35명 중 34명이 육군 출신이다. 특히 합동성 구현의 책임을 맡고 있는 합참의 육군 편중도 여전하다. 현재 합참의 육·해·공군 장교 비율은 2.4 대 1 대 1로 한다는 것이 불문율로 돼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육군 장교가 다수를 차지해 ‘제2의 육본’이라는 말이 나온다.

미군의 합참의장은 각 군이 분점하지만 우리는 육군이 독점하다시피해 왔다. 실권이 적은 합참차장만 해·공군이 교대로 맡는 식이다. 익명을 요구한 육군 출신 한 합참 간부는 “그동안 북한의 지상군 위협이 상대적으로 강조되다보니 주요 작전지휘 라인에 육군 출신 인사가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변화하는 안보 환경에 맞춰 합참 내 3군 균형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만만찮다.

◆타군 작전 잘 모르는 군 수뇌부=합참과 각 군 수뇌부는 자군은 물론이고 타군 작전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전력 증강이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동떨어져 있다. 한국전략문제연구소 권태영 박사는 “육군과 해군 사이의 인식 차가 가장 큰 문제”라며 “육군은 해군이 육군 작전을 지원하기를 희망하지만, 해군은 해양 교통 보호라는 기본 작전을 잘하는 것을 위주로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홍성민 소장은 "현대전은 육군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지상작전·해상작전에서 해군과 공군의 합동성이 최대로 발휘해야 승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공군이 육군과 더불어 함께 균형 발전을 이뤄야 한다는 지적이다.

◆군 인사·교육 개혁이 시급=전문가들은 군 인사와 교육이 합동성 강화의 첫 단추가 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권태영 박사는 “현재 육·해·공군 장교들은 타군에 대한 이해도나 합동작전에 대한 개념이 상당히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평시 인사와 교육, 훈련 등을 합동성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 군은 560개의 합동 직위를 운영 중이다. 이 중 합동전문자격자가 보직된 직위는 171개(31%)에 불과하다. 또 합동성 구현의 정점인 합참 주요 보직의 구성비도 문제로 지적된다. 합참의장은 최고의 합동전 전문가 중에서 나와야 한다. 하지만 이상의 합참의장은 합참 근무 경력이 전무하다. 다른 주요 보직자들도 합참 근무경력이 길지 않다. 전문성과 동떨어진 인사가 주인의식 없는 합참을 만든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다. 그래서 초급 영관 장교 때부터 소속 군과 합참을 번갈아 가며 근무해야 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합참의장에게 군정권을 어느 정도 주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국방연구원 노훈 책임연구위원은 “합참 간부들이 인사권자인 각 군 참모총장을 쳐다보고 일하는 것이 현실인 상황에서 합동직위 인사권에 대해 합참의장이 일정 지분을 행사하도록 하는 방안이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민석 군사전문기자, 강주안·고성표·정용수·권호 기자, 워싱턴·도쿄·파리=최상연·김동호·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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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영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자문위원(전 국방부 혁신단장), 구본학 한림대 국제대학원대학 교수, 김경덕 전 국방개혁실장, 김관진 전 합참의장, 김근태 전 1군사령관, 김연철 한남대 교수, 김윤태 한국국방연구원 전력소요검증실장, 김장수 전 국방부 장관(한나라당 의원), 김종민 전 방위사업청 차장(전 잠수함전단장), 김종탁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김종하 한남대 교수, 김학송 전 국회 국방위원장, 김희상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전 국방보좌관), 노훈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류희인 전 NSC 위기관리센터장, 박균열 경상대 교수, 박창권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해군 대령), 박휘락 국민대 (초빙)교수, 윤광웅 전 국방부 장관, 윤일영 전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윤우주 전 국방부 기본정책과장, 이경재 원광대 교수,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 최돈걸 전 병무청장, 한용섭 국방대 교수, 홍두승 서울대 교수, 홍성민 안보네트웍스 소장, 홍성표 국방대학교 교수(공군 대령), 황인무 육군 교육사령부 전력발전부장(육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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