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단독 처리' 반대한 국회의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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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기국회에 이어 소집된 임시국회에서도 의사 일정조차 합의하지 못하고 있는 여야를 향해 김원기 국회의장이 협상과 합의를 촉구하고 있다. 김 의장은 "여야가 합의하지 않는 한 국가보안법 등 4대 입법을 연내 처리하지 않겠다"는 뜻을 거듭 밝히고 있는 것이다. 국회에 원로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김 의장의 이런 자세는 돋보인다. 정치란 타협과 조화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김 의장의 화살은 1차적으로 여당인 열린우리당을 향하고 있다. 힘을 가졌다고 함부로 행사하거나 꼭 처리해야 할 의안이라고 해서 날치기 또는 여당 단독으로 통과시켰을 때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신중하게 생각하라는 충고다. 우리 의회사는 그런 경우 예외없이 여론의 역풍을 맞게 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라크 파병 연장안과 내년도 예산안 처리가 중요하긴 하지만 여당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를 소집해 통과를 강행한다면 야당을 길거리로 내모는 것이나 다름없다. 마침 한나라당 김덕룡 원내대표도 "예산안과 파병 연장안은 정치 현안과 연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들 안건은 연말까지만 처리하면 별문제가 없으니 지금은 야당과의 대화에 노력하는 게 우선이다. 4대 입법에 대해서도 상당수 국민과 야당이 반대하고 있고, 김 의장의 뜻이 확고한 만큼 여당은 '연내 처리 유보'선언이라도 해서 야당에 등원 명분을 줄 필요가 있다.

한나라당도 막무가내로 반대만 해서는 안 된다. 국회 과반 의석을 가진 여당이 상임위에 법안을 상정하지 못하도록 언제까지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반대하더라도 대안을 내놓고 반대해야 한다. 먼저 보안법 등에 대해 대안을 내놓고, 국회의장 중재로 여당과 합의처리 원칙이 세워지면 국회에 나가 예산안 등 일반 법안 처리에 협력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이해가 충돌하는 가운데 협상과 조정으로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욕설 공방은 이젠 지겹다. 여야는 김 의장의 충고와 중재를 받아들여 국회 정상화를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