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단' 너는 '신의 손'… 팀워크가 최고 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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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0면

'공포의 외인구단'.

월드컵조직위원회(KOWOC) 축구 동호회의 별명이다. 월드컵조직위는 20여개의 중앙부처와 공기업·민간기업에서 파견 나온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말하자면 '모자이크 집단'이다. 때문에 직원들은 다소간 이질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때론 같은 부서 내 또는 부서간에 불협화음이 일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동호인 축구회는 조직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월드컵조직위 축구 동호회가 출범한 건 2000년 5월. 당시만 해도 대부분 축구협회 출신 직원들로 구성된 조직위 내 경기국에서 몇명만이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구력(球歷)이 붙으면서 동호회는 면모를 일신했다. 각 부서에서 고루 동참해 회원이 30여명으로 늘었다. 연령도 2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하다.

무엇보다 이 팀을 보통의 동네 조기축구회로 봤다간 큰 코 다친다. 회원들은 왕년에 한가닥씩 하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골키퍼는 총무부의 이수민 담당관. 씨름 선수 이만기씨와 오촌간인 그는 당숙을 닮아 큰 체구(1m90㎝)에 순발력도 뛰어나다. 동료들은 그를 '신의 손'이라 부른다. 간혹 그를 대신해 준 회원격인 월드컵 입장권 판매 대행사 바이롬의 스페인 직원 카를로스가 골키퍼로 나서기도 한다.

스트라이커로는 선수 출신인 경기2부의 이상호 부장이 감독 겸 선수로 뛰고 있다. 남은 한 자리엔 최상덕 경기지원과장이나 최추경 경기1부장이 번갈아 선다.

경기부 소속의 캐나다 동포 마이클은 플레이 메이커다. 동호회에서 유일하게 20대의 젊은 피를 자랑한다. 그는 캐나다 올림픽대표 축구팀 출신으로 '월드컵조직위의 지단'이라고 불릴 정도로 정교한 패스를 뽐낸다.

좌·우 날개는 국가정보원에서 파견 나온 박성하 안전팀장과 문화관광부 출신의 임장락 총무부 서무과장이 맡는다. 쉰을 바라보는 박팀장은 1996년 중앙부처 축구대회에서 국정원(당시 안기부)에 우승 트로피를 안겨주며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발군의 실력파다.

이따금씩 벌어지는 'A매치'(다른 중앙부처와의 경기를 동호회는 A매치라고 부른다)때는 정몽준 조직위 공동위원장이 포워드로 뛴다.

월드컵조직위 축구 동호회는 지난해까지 가끔씩 발을 맞추고 행정자치부 등 중앙 부처나 조기 축구회 등과 일합을 겨뤘다. 현재까지 20여 게임을 치러 승률 80%대의 전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월드컵조직위 축구 동호회가 정말 값지게 생각하는 건 승률이 아니다. 회원들은 '외인 구단'에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팀워크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충만해 있다. 그렇게 해야 월드컵을 성공시킬 수 있으니까.

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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