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증의 자연법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25세 이상 미국사람은 80%가 뚱뚱하고 우리나라 성인의 25%도 그렇다. 뚱뚱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혈당·혈압이 높아지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높아 오래 지나면 체내의 크고 작은 혈관들이 막혀서 중풍이나 심장마비를 일으키기 쉽게 된다.

그런데 왜 비만증은 늘기만 하는가? 사람의 몸과 마음이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어렵다면 체중을 조절하는 것도 쉽지 않다. 더구나 생명체에는 체중과 관련된 자연법칙이 작용하고 있어서 '체중을 줄이겠다는 마음'을 제한한다.

작은 동물은 큰 동물보다 하루에 먹는 양은 적지만 체중단위 g당 에너지 소비(대사율)는 큰 동물보다 높다. 가령 쥐는 코끼리 보다 25배나 대사율이 높아서 먹이 1g을 코끼리보다 25배나 빨리 소진한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작은 동물이 큰 동물과 같은 체온을 유지하려면 단위 g당 더 많은 열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중심부의 열이 체표면까지 가려면 오래 걸리고, 열을 발산하는데 필요한 체중 대비 체표면적이 작아서 코끼리는 쥐보다 열을 덜 생산해도 된다. 코끼리가 쥐와 같은 속도로 열을 생산하면 몸 안은 금세 익어버릴 것이다.

모든 동물에서 체구와 대사량 사이에는 일정한 상관관계가 나타난다. 막스 클라이버가 1932년 발견한 이 일종의 규모의 법칙은 지난해 로스 앨러모스와 샌타 페이 연구소의 지오프리 웨스트·브라이언 엔퀴스트 등에 의해 모든 생명체에 걸쳐 적용된다는 것이 발견됐다. 체구와 대사량 사이에 어떤 보편적 대사율의 법칙이 존재하는 것은 생명체를 구성하는 기본단위인 세포의 대사가 가장 원활한 온도, 가령 섭씨 37도를 유지하기 위해 필연적이라는 설명이다. 이 법칙을 받아들인다면, 비만증은 체온을 유지하려는 물리화학적인 신체반응의 총체적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

미국 뉴멕시코주의 뜨거운 사막지대에서 살던 피마 인디언들은 현대화가 되면서 거의 모두가 비만해졌고, 40대 이상이면 반 이상이 당뇨병에 걸린다. 이 사람들을 거의 반세기 동안 추적하며 연구해온 국립보건원 피닉스연구소의 크리스천 보가두스는 최근 살이 찌는 피마 인디언들의 체온이 조금 낮고, 살이 찌고 나면 대사율이 오르며 체온도 정상화된다는 것을 보고했다.

좋은 법칙이 발견되면 이해되지 않던 것들이 이해되고 새로운 것을 예측하게 한다. 세계적인 비만증의 유행은 열 생산 메커니즘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설명되고, 열은 세포 안에 있는 미토콘드리아에서 먹은 음식물이 연소되며 생산되기 때문에 비만증을 일으키는 요인이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을 저해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또 미토콘드리아가 쉽게 손상되는 것을 감안하면, 많이 먹고 빨리 소모하는 동물의 수명이 빨리 타버리는 불꽃처럼 짧은 것과 억지로 살을 빼면 다시 체중이 늘어나는 요요현상이 필연적임을 납득하게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