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충 수업의 혼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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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리 교육에 또 다른 혼선과 혼란이 일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발표한 '공교육 내실화 대책'이 발단이다. 이 대책에는 '별도의 교육 프로그램'을 학교장 재량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안이 들어 있다.

언론에서는 이 방안이 사실상 보충수업을 허용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공식적으로 금지된 상황에서도 학교들이 편법으로 보충수업을 시행해 왔는데,'별도 교육'이 허용되는 마당에 보충수업을 하지 않을 리 없다고 본 것이다. 보충수업이 허용된다는 보도는 이렇게 해서 나오게 되었다. 보도가 나오자 어떤 학교는 벌써 보충수업을 시행할 채비를 갖추었다고 한다. 일반계 고등학교의 87%가 보충수업을 계획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학부모들은 보충수업으로 과외비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겠다고 기대했던 듯하다. 교원단체나 교사들은 대체로 보충수업의 비교육적 파장을 우려했다.

이 와중에 서울시교육청이 보충수업을 허용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혼선이니 혼란이니 하는 보도가 나왔다. 교육부는 보충수업을 허용한다는데 교육청은 계속 금지한다니 혼선이고,학교나 학부모들은 갈피를 잡지 못해 혼란이라는 것이다.

알고 보면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은 입장이 다르지 않다고 한다. 보충수업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에 다 동의한다는 것이다. 언론이 두 기관을 맞붙고 있는 것처럼 보도했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그럴 법하다. 교육부의 발표문에는 애매하지만 보충수업을 허용하는 것이 아님을 명시한 곳이 있다. 그래서 교육부는 혼선의 책임이 언론에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지레 짐작하고 앞서 보도했기 때문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탓하고 끝낼 일만은 아니다.

우선,교육부 입장이 명료하지 못했던 점을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대책 발표 후 기사들을 보면 교육부가 보충수업 허용을 전제로 하고 있는 여러 문답에서 그 전제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지 않다. 암암리에 보충수업 허용을 상정하는 인상을 준다. 이 일이 문답에 응한 사람의 순간적인 불찰 때문에 일어났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그 일은 교육부가 완성도 높은 대책을 마련해내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자성해야 한다. 사실, 미비한 여건에서 서둘러 마련해야 했던 대책에 빈틈은 많게 마련이다. 결국, 정책대안들이 당국자에게조차 추상적이고 모호한 채 발표돼 혼선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언론에도 문제가 있다. 대체로 언론은 정부 정책이 겨누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다. 그러나 완전하게 해결할 수 있는 교육문제는 드물다. 이럴 때 문제는 척결하려 들기보다 조금씩 줄이며 제어해 가야 할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현실적이다. 그럼에도 언론은 종종 그 척결을 기대한다. 이 기대에 부응할 수 없는 대부분의 정책대안들은 그래서 언론에 두들겨맞곤 한다. 요컨대 언론은 거의 모든 교육정책에서 두들길 명분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두들기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교육부를 감싸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교육에 대한 일관된 철학을 견지하며 비판도 하고 옹호도 해야 한다. 언론이 교육의 본연에 대한 주견을 세움이 없이 현재 정책에 대해 비판으로 일관하면, 이 또한 정책의 혼선과 혼란을 가져오게 된다. 오락가락 혼선을 빚는 교육정책에 언론의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보충수업의 논란을 풀 원칙은 무엇이어야 할까? 그 수업이 교육적이면 조장하고 아니면 억제한다는 것이 아닐까? 이 정도 원칙쯤 누군들 모르랴. 아마 잊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문제에 몰두한 나머지 교육의 본연을 간과했던 것이다. 학교 밖의 비교육적 과외를 없애야 한다는 데 몰두한 결과 그 과외를 학교 안에 들여오는 '묘안'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학교 밖에서 비교육적이었던 것이 학교 안에 들어온다고 교육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수업이라면 어디에 옮겨놓을까 고민하지 말고 어디에서건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힘쓰는 것이 상책이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어렵더라도 한눈 팔지 말고 원칙에 매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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