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블로그] 국가 재정위기와 월드컵 성적과의 관계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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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연합뉴스)

2010 남아공월드컵 조추첨이 끝나자 외신과 네티즌 사이에선 “B조는 IMF 더비(derbyㆍ시합)”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대한민국,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그리스 등 B조 소속 국가 모두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았거나 구조조정 계획을 수용한 국가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 국가는 IMF 지원을 받은 후 공교롭게도 하나같이 월드컵에서도 초라한 성적을 기록했다.

1986년 IMF 지원을 받은 나이지리아는 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지역 예선도 통과하지 못했다. 대한민국은 97년 아픔을 겪은 이듬해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1무2패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2000년 국가 부도 위기에 내몰렸던 아르헨티나는 2002년 한ㆍ일 월드컵에서 1승1무1패로 조별 리그에서 쓴잔을 마시고 짐을 싸야했다. 최근 재정 위기를 맞아 향후 3년 동안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기로 한 그리스는 이번 월드컵 첫 경기에서 대한민국에 2대0으로 패했다.

국가가 재정적 위기로 휘청대면 선수들 심리에도 영향을 주는 것일까.

최근 'PIGS'가 남유럽 재정위기의 진원지로 지목받고 있다. 포르투갈(P), 이탈리아(I), 그리스(G), 스페인(S)이다. ‘유럽 경제 축내는 탐욕스러운 돼지떼(pigs)’ 정도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외신들은 “PIGS의 대규모 국채 만기가 도래하는 7월이 위기의 고비다. 채무상환에 실패할 경우 다른 유럽 국가들로 위기가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포르투갈은 공공 프로젝트를 잠정 중단하는 등의 긴축정책을 내놨고, 이탈리아는 향후 2년간 공공부문 임금 대폭 삭감 등 276억 유로 상당의 재정적자 감축 계획을 세웠다. 그리스는 퇴직연금 수령 개시연령 상향 조정 등의 연금개혁안을 내놨고, 스페인은 공공부문 임금 5% 삭감 등 150억 유로 규모의 재정 긴축안을 최근 발표했다. PIGS는 지금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있는 것.

2010 남아공월드컵 7일째. 이들 네 국가의 성적은 어떤가. 한마디로 기대 이하다. FIFA(5월 기준)랭킹 3위인 포르투갈은 27위 코트디부아르와 0대0으로 비겼다. 5위인 이탈리아 역시 31위 파라과이와 1대1로 비겼다.

13위 그리스는 47위 대한민국에 2대0으로, 2위인 스페인은 24위 스위스에 1대0으로 패했다. 아직 16강 진출을 결정지을 모든 경기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주색군단(포르투갈), 아주리군단(이탈리아), 해적선(그리스), 무적함대(스페인) 등 16강 진출이 확실시되던 팀이 첫 경기부터 맥을 추지 못한 건 사실이다.

각 국의 재정 위기가 축구 성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 수 없지만 ‘PIGS’ 4개국의 상황을 보면 “무관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한국은행은 지난 4일 경제성장률이 7년3개월 만에 8%대에 진입하는 등 각종 지표상으로 국제 금융위기의 터널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발표했다. 우리 축구팀도 파죽지세다. 경제 상황의 호조세가 축구에 연결돼 대한민국이 16강, 8강을 거쳐 다시한 번 4강 신화를 만들기를 기대해 본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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