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주의'의 함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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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논리보다 이념적·정서적 비난이나 호소가 더 큰 영향을 미칠 때가 많다. 논리학에선 이를 '사람의 논증'이라고 해서 논리적 오류의 대표적인 경우로 꼽지만, 이런 논증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예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진보·보수를 갈라 상대의 주장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이념적 덧씌우기가 그랬고, 정치적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특정 지역을 배제했던 지역주의가 그랬다.

최근 등장하고 있는 '음모론'에서도 그 같은 냄새가 난다면 기자의 과민 반응일까.

물론 긍정이냐 부정이냐를 떠나 그것이 논리를 능가하는 힘을 갖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다른 견해가 충돌할때는 각기 최소한의 논리를 갖춰야 그나마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합리적 의사소통만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라고 했을 때 그가 의미한 것은 인간사회가 궁극적으로 합리성에 기댈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교육평준화를 둘러싼 논쟁을 보면 최소한의 논리도 지켜지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다. 찬·반 각각은 극단적인 사례를 들어 상대를 비판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주장이 정당함을 주장한다.

극단적 사례가 설득력을 떨어뜨리는 점을 감안하면 양측 서로 엇박자를 놓고 있는 셈이다. 대신 논리적 설득보다 비논리적인 대중적 정서에 의해 그 정당성을 얻으려 하고 있다.

평준화론만큼 대중의 정서에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것도 찾기 어렵다. 학벌의 폐해를 경험했기 때문인지 평준화는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 지지가 평준화론 논리의 함정까지 외면할 권리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PISA(국제학력평가프로그램)가 2000년 OECD국가를 포함한 32개국을 조사한 결과를 살펴보면 그렇다. 이 조사에 따르면 평준화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32개국 중 한국 학생들의 평균학력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놓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상위권 학생들 성적은 여타 국가 상위권 학생보다 현격하게 낮다는 사실이다.

이런 왜곡된 분포곡선을 놓고 어떤 학자는 "폭력적인 평균화"라고 평가한다. PISA의 평가는 평준화가 학생들의 평균성적을 향상시켰음을 확인하고 있지만, 상위 학생들의 성적이 형편없다는 부정적인 결과, 사회적 지위와 성적의 약한 상관관계 등도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를 외면하고 무조건 평준화를 옹호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개운하지 않다.

한때 평등주의는 진보의 철학적 기반이 된 적이 있다. 그것도 '기회의 평등'이었지 평균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평등의 기계적 적용이 사회적 역동성을 사라지게 했던 경험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평균'이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강제될 때 그것은 이미 새로운 비전을 줄 수 있는 대안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평등주의가 대중적 정서에 기대 평균주의로 왜곡되고 있는 지금 평균주의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고 그 고리를 풀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은 평준화를 완전히 폐지하자거나 사회적 불평등의 재생산을 옹호하는 것과 다른 얘기임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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