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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과 문화

내 책의 주소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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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내 전공은 한국 건축역사학이다. 전공과 관련하여 옛 건축을 해석하고 연구한 몇 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그러나 서점에서 내 책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2년 전 출판한 내 책은 전국의 사찰들을 건축적 관점에서 해석한 내용이었는데, 건축 책으로는 꽤 많은 부수가 팔려 화제가 되었다. 건축 분야가 공학.기술분야로 분류되기 때문에 건축서적은 대부분 공학서적 부분에 꽂히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을 서점에 따라 인문학으로, 예술로 분류하였고, 심지어 종교, 여행과 취미, 문화재, 더 나아가 수필로 분류해 어디서 찾을지 몰라 많은 항의를 받았다. 최근에도 불교건축에 관한 저서를 출판했는데, 이 책도 공학이나 종교나 예술사 등 주거부정의 상태로 흩어질 운명이다.

오래전부터 건축이란 분야가 공학이냐, 예술이냐는 논란이 있어왔다. 대학의 건축과가 우리나라에선 공과대학에 속해 있지만, 내가 몸담고 있는 예술학교에는 미술원에 속해 있다. 그런데 내 전공은 오히려 인문학에 가깝다. 공과대학 건축과를 나와 예술학교 건축과에 있으며 전공은 인문학을 하고 있으니, 모든 분야를 섭렵한 만능인일 수 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사실은 어느 한 분야도 정통하지 못해, 공학계에서는 인문학이라 말하고, 예술계에선 기술이라 하고, 인문학계에선 공학이라 둘러댄다.

묘한 전공을 하니 그럴 수 있다고 하겠지만, 건축가라고 해서 사정이 달라지진 않는다. 어려운 수학공식으로 계산해야 집이 무너지지 않고, 화가나 조각가 뺨치게 세련된 형태를 만들어내야 볼 만한 집이 되며, 들뢰즈를 들먹이고 노자를 논해야 수준 높은 건축가 대우를 받는다. 경제적 대가에 비해 많은 능력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 건축가라는 직업이다. 의사는 본인은 불행하지만 가족이 행복한 직업이라면, 건축가는 그 반대의 경우다. 매일같이 현장을 쏘다니고 밤일을 낮같이 하니, 벌어다주는 수입도 적은 데다 가족들과 같이 지낼 시간조차 없다. 그래서 미국에선 가장 이혼율이 높은 직종이라나.

그럼에도 철없는 건축가들은 일의 영역을 끝없이 늘려간다. 건물 설계는 물론이고, 가구부터 인테리어 설계도 마다하지 않는다. 선유도 공원같이 조경분야도 손대고, 파주 출판도시나 헤이리 예술마을과 같은 도시계획도 맡아 버린다. 심지어 기념탑과 같은 환경조각까지 넘본다. 물론 분야마다 전문가들이 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조경설계가.도시계획가들은 그래서 건축가를 비난한다. "집이나 잘 지어라."

그러나 곰곰이 짚어보면 주거가 부정한 내 책의 주소나, 본업이 무엇인지 모를 건축가들의 작업은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다. 건축을 한다는 것의 목적이 무엇인가? 인간의 삶을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술도 예술도 필요한 것이고, 인간의 삶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작은 의자이든, 침실이든, 공원이든, 도시의 길과 광장이든, 어디든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인간의 삶을 대상으로 하는 한, 건축은 근본적으로 인문학일 수밖에 없다. 그것도 실천적 인문학이다. 연구실과 설계실에서 폭넓은 교양과 깊은 사유를 마쳤다고 건축이 완성되지 않는다. 구체적인 결과를 만들어 사회에 돌려주어야 끝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연구하고, 책을 쓰고, 교육하고, 설계하고, 업체를 경영하면서, 때로는 시민운동에 앞장서기도 한다.

경계에 서서, 모든 분야를 지켜보고 참여하는 것이 건축의 숙명인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여기서 오라면 필요에 따라 가기도 하고, 흥미 없으면 딴 길로 가 그곳의 전문가라고 우기는 경계인의 즐거움을 누린다. 아마도 실상을 안다면 기회주의자라 부르겠지만.

김봉렬 예술종합학교 교수.건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