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음악 전문가 에르베게 '대표음반 16選' 출반 바흐·브람스·베토벤 등 망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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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고(古)음악 또는 정격음악 연주의 발상지는 영국이다.일찍부터 실증주의가 팽배한 데다 골동품 수집 취미가 유행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이후 중산층을 위한 공개 연주회가 발달해 '옛날 음악'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당시 클래식 음악이란 '옛 음악'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1998년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음악 칼럼니스트 노먼 레브레트가 영국 고음악의 위기를 다루면서 그 원인을 '유럽 군단의 영국 침공'이라고 진단했다. 이때 그가 선봉장으로 꼽은 인물은 벨기에 태생의 필립 에르베게(55)다. 그해 8월 런던 프롬스 축제에서 에르베게가 연주한 바흐의 '마태 수난곡'은 영국의 자존심을 꺾어놓기에 충분했다.

에르베게가 프랑스의 아르모니아 문디 레이블에서 첫 음반을 발표한 지 올해로 20주년. 그간 발표해온 60여종의 음반 중 그가 직접 엄선한 16장을 '에르베게 에디션'으로 묶어 할인가격으로 내놓았다.

모두 '디아파종''르몽드 드라 뮈지크''콤팩트 디스크 매거진'등에서 최고 점수를 받은 음반들이다. 세인의 평가와는 무관하게 본인의 솔직한 고백이 담겨 있는 '탁월한 선택'이기도 하다.바흐의 칸타타,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 베토벤의 '장엄 미사' 등 그동안 국내 음악팬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은 음반들도 눈에 띈다. 바흐가 3장으로 가장 많고, 쿠르트 바일의 '베를린 레퀴엠' 같은 현대 작품도 포함돼 있다.

그의 연주는 명료한 해석과 따뜻한 음색, 마치 객석에 앉아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강한 표현이 일품이다. 의학과 정신분석학을 전공한 때문인지 작품의 세부를 명쾌하게 해부하는 날카로운 분석력과 듣는 이의 가슴을 사로잡는 따뜻한 음색을 겸비하고 있다.

대부분 합창음악이지만 최근엔 기악음악과 고전·낭만·현대음악에도 관심을 보인다. 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 쇤베르크가 실내악 버전으로 편곡한 말러의'대지의 노래' 등이 그것이다. 바로크 음악에 정통한 지휘자이지만 헨델은 절대로 녹음도 연주도 하지 않는 고집을 보이고 있다. 음악이 너무 격정적이라는 이유에서다.02-825-5811.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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